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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사건사고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 사건

by CleanHub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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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월 18일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現 아산시 온양4동)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아산에서 살다가 이주하여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거주하던 조승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간 전형적인 한국 서민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고 세탁소를 경영하며 열심히 사는 조용하고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그의 누나는 아이비리그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여, 펜타곤에서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가족들로만 놓고 본다면 나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모범적인 이민자 가정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조승희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과묵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삼촌은 그가 '열린 사회'인 미국에 가서 자신감을 되찾기를 기대했다. 9살 나이의 그는 낯선 미국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당시 영어를 못하던 그는 매우 조용했고 그런 그를 학교에선 문제아로 여겨 특수교육을 받게 했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다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학교의 상담 프로그램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서럽던 시기를 잘 극복했다. 5학년이 된 조승희는 수학과 영어에 특히 뛰어난 학생이었다. 교사는 그를 다른 학생들의 모범으로 삼기도 했다.

급우인 김경원에 의하면 교내에는 3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있었으며, 아무도 조승희를 미워하지 않았다. 김경원은 당시 조승희에 대하여 좋았던 기억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래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어릴 적부터 정신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말들도 있어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당장 아래 김윤수 씨 인터뷰나 Regan Wilder의 인터뷰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에서 조승희는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그가 낯을 많이 가리고 말이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조승희의 성격에서 시작된 학교폭력은 인종차별로까지 변질되어 조승희를 극심하게 괴롭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선택적 무언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를 향한 폭력과 인종차별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급우들은 반에 그가 나타나면 물건을 던져댔고 그를 넘어뜨리면서 소리치며 비웃었다.

그는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계속 불러도 대답을 아예 거부하자 참다 못해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낙제 점수를 주겠다는 교사의 경고에 마지못해 책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며, 마치 무언가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자신감 없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그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했고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그를 조롱했다. 학교에서 그가 심한 따돌림을 당하는 걸 걱정하던 그의 가족들, 특히 어머니와 누나는 그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무슨 질문을 해도 그냥 "Okay"가 다였다고 한다.

그를 답답해하던 아버지는 그를 꾸짖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커질 뿐이었다. 조승희의 부모는 망가진 그를 치료하고자 교회에 보냈지만 교회의 기독교 소년 단체마저도 그를 조롱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조승희는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에 진학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조승희가 버지니아 같은 곳이 아니라 프린스턴 같은 곳에 갔으면 좋겠다고 이웃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조승희가 입학한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통칭 "버지니아텍" 역시 미국에서 상당한 명문으로 카네기 멜론 대학교 등과 함께 월드 클래스 이공대라고 할 수 있다. 프린스턴이 미국 대학 티어에서 워낙 넘사벽이어서 굳이 그 누나와 비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조승희는 대학 1학년 때 경영정보학을 선택했지만, 2학년이 되면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대학교에서 그는 지극히 내향적이며 겉도는 사람이 되었다.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접한 니키 지오바니 교수는 곧바로 범인이 누구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수업을 가르치던 지오바니 교수에 의하면 그의 작문은 증오로 가득차 있었고 그의 극본은 위험한 것이었다. 조승희는 출석 시트에 본인 이름이 아닌 그냥 물음표만 적어 내기도 했다. 그가 문학 클래스에 제출했던 극본인 <Richard McBeef>가 널리 알려졌는데, 심지어 유튜브에 <Richard McBeef>를 실제로 연기한 영화와 연극이 나오고, <Richard McBeef>가 문학적으로 분석되고 평론된 기사와 풍자된 예도 있다.

조승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매우 매료되어 있었는데, 해외에서는 그가 악역처럼 묘사한 리처드 맥비프의 이름이 리처드 3세와 맥베스를 비틀어서 지은 이름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기에 부정하는 의견도 많다.

평소 조승희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담당교수 지오바니는 학과장인 루신다 로이 교수를 통해 조승희를 자신의 문학 수업에서 제명시켜 버린다. 그리고 학교의 관리부서 곳곳에 연락하여 조승희를 엄중히 경계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담당 부서들이 면밀한 조사를 한 결과 조승희가 자신 혹은 타인에게 명백히 위협이 되거나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회신하였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크리스티나 릴릭이란 학생은 조승희가 자신을 스토킹했다고 주장하였다.

이 학생이 머무는 방문의 보드판에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는데, 과거 조승희가 문학 수업의 출석 체크란에 물음표를 그린 적이 있던 걸 이유 삼아 조승희가 자신을 스토킹한게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러나 동급생의 증언에 따르면 이 학생은 자신의 방문 보드판에 물음표를 그리며 스토킹한 사람이 조승희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조승희가 8학년 때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났는데 한 학생의 말에 따르면 그가 그것을 소재로 살인과 자살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조승희의 룸메이트였던 앤디 코크(Andy Koch)라는 학생에 따르면 대학교 때 여학생을 스토킹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코크도 조승희를 그냥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조승희가 자신에게 젤리(Jelly)라는 '상상 속의 여자 친구'가 있고, 그녀는 슈퍼모델 출신이며 어떤 때는 "젤리하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냥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나 가족들하고 같이 웃어넘겼다. 하지만 조승희가 여학생을 스토킹한다고 경찰의 신고가 들어왔을 때 조승희에 대한 코크의 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조승희는 그냥 그 여학생을 보기 위해 갔다고 하고 그냥 애 괜찮은지 보려고 했는데 꽤나 가벼워 보이는 여자애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더구나 본인 소개를 "안녕 난 물음표야"라고 해서 여학생을 더 놀래켰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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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가 말은 별로 안 하는 학생이었지만 페이스북 프로필 페이지를 통해 학생들하고 교류했고 그냥 얼굴에 물음표가 있는 조로 피규어가 조승희의 프로필 사진이었고 남들과는 뭔가 다른 게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코크와 친한 어느 여학생 문 보드판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대사(로미오가 자기 가문이 줄리엣에 대한 사랑을 방해하는 것에 괴로워하며, 가문의 이름을 찢어발기고 싶다고 말하는 대사)를 써붙였다. 여학생은 처음에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고 코크와의 대화 이후 확실히 신고하자고 마음 먹었던 것 같다.

여학생의 말에 따르면 여학생은 딱히 온라인 어느 포럼에도 자기가 사는 곳을 공개한 적이 없다. 때문에 조승희가 뭔가 마음 먹고 여학생이 어디 사는지 뒤지지 않은 이상 여학생이 사는 곳을 찾기는 힘들었을테고 그게 여학생을 더 걱정시켰던 것 같다.

"he turned out all psycho"라고 하는 거 보면 코크가 이미 여학생한테 조승희에 대해 말하기 전에 조승희의 행동이 여학생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승희는 학교 경찰에게 경고를 받았고 그 후 여학생에게 더 접근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조승희는 룸메이트인 코크에게 자신이 자살할지도 모르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코크는 학교 당국에 신고를 한다. 학교 당국은 조승희를 정신 감정을 담당하는 지역위원회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조승희는 '심한 우울증'과 '무감각증(flat affect)'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는다.

조승희는 이런 진단을 부인하였지만 결국 버지니아 주의 정신건강센터에 수용된다. 버지니아 주 판사는 조승희가 외래환자로서 성실하게 정신과 치료에 임한다는 조건 하에 퇴원 판결을 내린다. 이로 인해 조승희는 정신건강센터에 구금된 지 하루 만에 풀려난다.

조승희는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NBC에 보낸 영상에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스냅사진들과 '선언문'을 낭독하여 자신의 뜻을 설파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선언문의 내용은 NBC가 일부 검열한 것으로, 보도된 내용은 원래 선언문의 30%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당시 NBC 사장은 "검열된 선언문에는 극도로 폭력적인 이미지와 저속한 욕설이 들어있으며 이것이 세상에 나오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사실 이것만이 이유는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 조승희의 전체 선언문에서는 스스로가 앞으로 미국 전역에서 일어날 총기난사의 선행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혁명을 일으키자'라며 대놓고 선동하고 있다.

사건 직후 모방범죄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열은 불가피했을 것이다.선언문 전문

그는 "너희는 오늘을 피하기 위한 기회를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나는 내뺄 수 있었지"만 "너희가 욕보인 내 형제 자매들"과 "약하고 죄없는 동포들을 위해" 행동했다고 밝히며 "너희 덕분에 예수처럼 죽는다"고 선언했다.

그는 "목으로 쓰레기를 쳐넣는" 것과 같은 치욕적인 괴롭힘들을 나열하면서 이 괴롭힘들이 "단지 너희들이 그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다"며 "너희는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고" "너희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행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뒤 카메라는 꺼진다.

비디오와 함께 동봉된 각 사진에는 조승희가 적은 캡션이 달려 있었는데, 자신들을 괴롭힌 불특정 다수와 그의 관념 속 '위선적인 기독교도 부유층 주류 세력'에 대한 원망과 저주, 자기연민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 역시 대다수 언론 보도에서는 검열되었다.

대학 기숙사 엠블러 존스터홀에서 여학생 에밀리 제인 힐셔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조승희는 204, 206, 207, 211호실에서 5명의 교수와 30명의 학생을 살해하는데, 그는 언제나 강의실에 들어가서 교수를 제일 먼저 살해했고, 그후 학생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살인 그 자체에는 집착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문을 막자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간다든지, 이미 죽은 학생들에게도 마구 총을 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생존자들은 조승희가 증오도 분노도 아닌 멍 때리는 듯이 텅 빈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총을 쏠 때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했다. "안녕, 잘 지냈니?"

범행 이후 조승희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쏴서 자살했다. 조승희의 시신에서는 붉은색 잉크로 적힌 '이스마일 액스(Ismail Ax)'라는 이름이 발견되었는데, 그가 언론사에 보낸 택배에서도 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오갔다.

조승희 본인의 선언문을 보면, 그는 주류 기독교 사회에서 벗어난 외부인으로서의 아이콘인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면서, 자신은 미국의 테러리즘과 싸우는 안티테러리스트(anti-terrorist)라며 이 이름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Ax를 나머지 이름으로 삼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총이든 칼이든 날카로운 물건이면 뭐든 잡고 일어나 싸워라'라는 성명서의 내용을 보면 흉기로써의 도끼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그는 '안티테러리스트를 상징하는 숫자'라면서 88이라는 수를 강조하고 있는데, 의미는 명확하지 않으나 그가 이 범행을 통해 스스로를 아이콘화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남긴 어록

때가 왔을 때, 나는 실행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한테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천 억번의 기회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결국 내 피를 흘리게 했다.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으며 한 가지 선택만을 남겨놨다. 결정은 너희의 것이었다. 이제 너희들의 손에는 영원히 씻기지 않을 피가 묻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떠날 수도, 내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 이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닌, 너희들이 욕보인 나의 아이들과 형제자매들, 그들을 위해 한 것이다.

너희들은 내 마음을 파괴했고, 영혼을 겁탈했으며, 양심을 불태웠다. 너희들은 단지 한 불쌍한 소년의 삶을 짓밟아 없앤다고 생각했겠지만, 고맙게도 덕분에 나는 예수처럼 죽는다. 약하고 힘없는 동포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

내 삶이 이렇게 끝나기를 원해왔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너희들이 나한테 해준 만큼 총알로 되갚아주마.

내가 이런 짓을 할 때까지 너희들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봐.

너희는 그저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즐거워했다. 너희는 내 머리에 암덩어리를 넣고, 내 영혼을 갉아먹는 것을 즐거워했다.

너희는 누군가 너희 얼굴에 침을 뱉으며 목으로 쓰레기를 쳐넣는 기분을 아는가?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한쪽 귀에서부터 다른쪽 귀까지 목이 깊이 베어지는 기분을 아는가? 산 채로 불태워지는 기분을 아는가? 다른 이들의 유흥을 위해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며 죽어가는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너희는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졌다. 너희는 메르세데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이 망나니들. 너희는 금목걸이들로 만족하지 못했다. 이 속물들. 너희의 신탁도 부족했다. 너희의 보드카와 코냑도 부족했다. 그 모든 방탕한 것들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너희의 쾌락주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한없이 부족했다. 너희는 모든 것을 가졌는데도.

나는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내 사람들을 이끌 것이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이런 일을 했어. 너희들이 내게 했던 짓들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훗날의 힘없고 약한 자들을 위해서.

이게 다야. 이곳에서 모든게 끝나는 거야. 길의 끝이야. 대단한 인생이었어. 대단한 인생.

힘없고 약한 나의 형제자매들 박해받는 동양인들을 위해서 나는 괴물이 되었다.

이제 너는 행복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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