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광주에서 태어난 김정호는 조용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처음 나왔어요. 그의 어머니는 담양의 유명한 명창 박숙자였고, 외할아버지 박동실은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판소리 명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답니다.
외가는 그야말로 국악 명문가였는데, 5촌 당숙인 박종선은 국립국악원의 아쟁 수석 단원을 역임했을 정도라고 해요. 음악적 재능은 어머니 쪽에서 고스란히 물려받은 셈이죠.
하지만 1960년대만 해도 대중음악은 물론 국악조차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어요. 어머니는 아들이 음악가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했고, 여섯 살 어린 나이에 국악에 관심을 보이자 집안에 있던 모든 악기를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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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6월 17일,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도도리(현재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 월포마을에서 본명 강상수로 태어났어요. 여러 자료에서 출생 연도에 대해 1945년 혹은 1946년이라고 이야기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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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김정호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우이동에서 기타와 씨름하며 음악에 몰두했다고 해요. 독학으로 기타를 익힌 그는 곧 미8군 무대에 서던 이상일에게 음악을 배우면서 실력을 키워나갔답니다.
이 시기에 평생의 친구가 될 어니언스의 임창제를 만나게 돼요. 김정호는 데뷔를 앞둔 임창제를 위해 "사랑의 진실"과 "작은 새"라는 곡을 선물했는데, 발표 당시에는 임창제의 곡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후에 임창제가 이 사실을 밝히면서 김정호는 작곡가로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자신이 만든 곡으로 친구가 큰 인기를 얻자, 김정호는 1974년 9월에 "이름 모를 소녀"를 발표하며 가수로 정식 데뷔했어요. 임창제의 소개로 TBC '패티김 쇼'에 출연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이때 함께 출연했던 신인 가수가 훗날 가요계의 거목이 되는 조용필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빛을 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975년 '대마초 파동'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어요. 친구 임창제와 함께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고 방송 출연 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그의 가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되었답니다. 다른 가수들은 1979년에 활동을 재개했지만, 김정호는 건강 악화로 인해 대중 앞에 다시 서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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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는 데뷔 초 나탈리 우드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미모 덕분에 많은 이목을 끌었어요. 당시 주류 미의 기준과는 달라 주연 자리를 얻기 어려워 10년 가까이 조연 배우로 머물면서 꾸준히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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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 김정호는 군 복무 중 탈영 사건으로 영창에 수감되기도 했고, 제대 후에는 심한 감기에 걸려 폐결핵이라는 병을 얻게 되었어요. 1980년에 앨범 "인생"을 발표했지만,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요양원에 입원해야 했답니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4개월 만에 요양원을 나와 다시 음악 작업에 매달렸다고 해요.
1983년, 그의 마지막 앨범이 된 "님"을 발표했어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진행된 앨범 작업은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숨이 차는 고통 속에서도 한 소절씩 겨우 녹음하며 5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곡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당시 그는 앨범 작업보다는 꽹과리를 치면서 자신의 고통과 울분을 달랬다고 하는데, 그의 마지막 앨범 "님"에는 그러한 슬픔과 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해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1985년 11월,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내 죽거든 앞이 보이는 넓적한 곳에 묻어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마지막 인터뷰를 보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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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실이는 1982년, 강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8군 부대의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어요. 당시 비정규직 신분으로 시작한 무대 경험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을 갈고닦기 위한 밑거름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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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김정호가 남긴 음악은 깊은 울림을 주며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어요. 그의 음악에는 전통 국악의 정서와 현대적인 감성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아요.
그의 음악적 재능을 기리기 위해 1986년에는 한국 가요 역사상 최초로 추모 앨범이 발매되었고, 송창식, 윤형주, 김현식 등 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다시 불렀답니다.
2011년 이후, 그의 음악은 다시 한번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요. '1박 2일'에서 "님"의 도입부가 사용되기도 했고, '나는 가수다'에서 조관우가 "하얀 나비"를 리메이크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죠.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도 "하얀 나비"가 중요한 장면에서 삽입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어요. 심지어 그의 데뷔곡인 "이름 모를 소녀"는 트로트 가수 태진아에 의해 새롭게 불리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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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님"의 첫 소절은 오랜 시간 동안 MBC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멜로디를 들으면 김정호를 떠올린다고 해요. 또한,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잘못된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폐결핵이 사인임에도 불구하고 대마초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고, 한때 마약 근절 홍보 책자에 익명으로 언급되면서 오해를 사기도 했답니다.비운의 천재 가수 김정호님이 편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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