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1988년에 김영삼의 제안으로 통일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같은 해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동구에서 출마하여 당시 주요 후보였던 허삼수를 이겨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당선에서 노무현이 허삼수와 맞붙은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노무현은 김영삼에게 자신을 싸움판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이는 그의 결단력과 특유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5공 청문회에서는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청문회에서는 현대그룹의 수장인 정주영과의 대화가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초선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정주영을 대하는 뚝심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정주영에게 제기한 질문은 그의 사회적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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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활약으로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로 불리게 되었고, 이는 그의 정치 경력을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김영삼은 그를 지원하기 위해 자주 자택으로 불러와 용돈을 지원하는 등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과의 관계는 끝나고, 노무현은 민주당으로 입당하여 대변인과 부총재를 역임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동교동계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제13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 후 1992년 3월,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동구에 재출마했으나 4선년에 본인이 꺾었던 허삼수와 리턴매치에서 재선에 실패하면서 낙선하였고,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3당 합당하기 이전에 같은 야당이었던 민주자유당 문정수에게 밀리며 이 역시 낙선했습니다.
또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지만, 현역 전국구 의원 이었던 신한국당의 이명박, 당시 이 지역 현역 4선 중진인 새정치국민회의의 이종찬 등에 밀려 3위로 낙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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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원기, 김정길, 이부영, 이철, 유인태, 박계동, 김부겸 등의 민주당 내 반 이기택 성향 지구당위원장들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일명 '통추')를 결성했으나,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추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 여부를 놓고 분열되자 한나라당행을 선택한 이부영, 김부겸 등과 달리 쿠데타와 3당 합당의 원죄가 있는 당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부총재를 맡으며, 김대중 총재의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웁니다.
이후 1998년 2월, 이명박 의원이 선거법 위반 시비에 휘말려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바람에 종로구 지역구는 무주공산이 되었고, 노무현은 그해 7월에 열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여기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원래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대신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상태였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의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고건 전 총리를 직접 영입함에 따라 출마를 포기하고 대신 종로구 재보궐선거에 공천된 것입니다.
이 때 역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으나 고건 전 총리 공천으로 인해 엎어지면서 크게 반발한 동교동계 한광옥과 달리 노무현은 시장 후보 자리를 쿨하게 포기하자, DJ는 "정치는 노무현이처럼 해야 합니다"면서 칭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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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6년 만에 국회에 복귀했지만, 2년 뒤인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는 종로구 재출마 대신 다시 부산으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습니다. 보좌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와 자녀들까지 전부 반대했습니다.
총선 이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노무현을 취재했는데, 권양숙 여사와 딸 노정연씨가 "종로에서 한 번만 더 해서 인지도를 높이고 부산에 내려가자고 얘기했습니다."는 언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고집은 확고했습니다. 한편 노무현이 출마하지 않아 공석이 된 종로구에는 국정원장직에서 물러난 이종찬 전 의원이 다시 공천되어 5선을 시도했지만 그도 한나라당 정인봉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면서 정계를 떠났습니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2000년 ~ 2001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낙선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2000년 8월부터 해양수산부장관을 8개월 동안 역임했습니다.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직원들과 같이 이메일로 대화를 하고 수평적 토론 문화를 새로이 정립했고, 다면평가를 비롯한 인사평가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공직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공무원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관직 재임 시절에는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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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탈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특별 대접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관행을 바꾸어 나갔습니다. 장관 출근 시간에 맞춰 대기하는 것부터 관용차를 이용하는 것까지 모두 없앴습니다. 또한, 지방 출장에서도 공관장이 좋은 차를 빌려서 마중을 나오던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을 책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에도 장관으로서의 경험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2001년 12월에는 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초기에는 인지도가 낮았고 행정 경험도 부족했지만, 민주당 내에서의 지지를 받고 노풍을 일으키며 역전승에 성공했습니다.
대선 본선에서는 이회창 후보와의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이회창은 악재를 안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대국민 사과로 여론을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그의 정치적 자산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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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대선 캠페인은 초반에는 유리하게 시작됐지만 2002 FIFA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선거 악재가 뒤따랐습니다. 이로 인해 투표율이 낮아지고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서 노무현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통해 노무현은 다시 소통을 모으게 됐습니다. 이후 단일화가 진행되었고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앞섰습니다. 그러나 대선 전날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이 둘은 정치적 결별을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TV 생중계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결국, 70.8%의 투표율로 노무현 후보가 2.33%의 근소한 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꺾고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대선 낙선 후 정계를 은퇴했습니다.
이로써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민주당계에서 최초의 영남 출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특히 2002년 대선은 노무현의 정치적인 운명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었으며, 이후 많은 대권주자들이 그의 당선을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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