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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이야기

노무현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정계입문전까지의 행적 힘겨운 출발과 불굴의 의지

by CleanHub 2024.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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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어린 시절

노무현은 1946년 9월 1일(음력 8월 6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인 노판석(盧判石, 1900년 ~ 1976년)과 어머니인 이순례(李順禮, 1914년 ~ 1998년) 사이에서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가족 구성원으로는 3남 2녀 중 막내였습니다.

노판석은 재혼하고 있었고, 이순례는 삼혼이었기 때문에 이복누나인 노명자와 이부누나인 김선밀(金仙密)이 함께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노판석은 당시 46세로 이미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노무현은 가족에서 늦둥이로 자랐습니다.

 

노무현의 아버지 노판석은 일제강점기에 타이어 제조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었으며, 노무현이 태어날 때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이에 어머니인 이순례는 다양한 일을 하며 가정을 지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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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로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큰 형 노영현(盧英鉉, 1932년 ~ 1973년)과 작은 형 노건평(盧健平, 1942년 ~ )이 있었습니다. 노무현은 자신의 저서에서 큰 형 노영현이 아버지의 어려움을 보완하고 노무현의 교육에 힘써준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노무현이 작은 형 노건평을 아버지 같은 존재로 여겼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실제로 노건평은 노무현의 정치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자신의 발자취를 가리지 않았으며, 그가 큰 형의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학창 시절: 1953년 ~ 1964년 노무현은 1953년에 진영 대창 국민 학교에 입학하여 학창 시절을 시작했습니다. 6학년 때인 1958년에는 학교의 전 학생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1959년에는 진영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가정의 어려운 형편으로 외상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이승만 대통령 84회 탄신일을 맞아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가 열렸는데, 노무현은 이 대회에서 '백지 동맹'을 조직하여 정학을 당했습니다. 2학년 때에는 부산에서 시험을 통해 부산일보 사장 김지태가 설립한 부일 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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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공부와 삶에 방황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첫째 형의 권유로 부산상업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했지만, 고등학교 시절도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노무현은 21세가 되는 시점에 학업을 마친 채 대학 진학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청년 시절: 1965년 ~ 197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농협 입사 시험에 응시했지만, 불합격하였습니다. 이후 한 달 반 정도 개인 회사에서 일하였으나 월급이 너무 적어 생활이 어려워 퇴사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집 근처 산 속에 토담집을 짓고 공부를 하려 했으나 시험에 필요한 책을 살 돈이 없어 울산으로 가서 막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고를 당해 이가 부러지고 입술이 찢어지는 등의 부상을 입었지만, 이후 예비시험에 합격한 소식을 병상에서 들었습니다.

 

당시 사법시험을 보려면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하여 응시 자격을 얻어야 했는데, 예비시험 합격 후 사법시험 학력 제한이 없어진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로써 예비시험 합격의 의미가 퇴색되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해서 사법시험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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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3월 8일에 육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강원도 원주시 제1야전군사령부 부관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하였으나, 1969년 전방 차출에 자원하여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있는 제12보병사단(을지부대) 제52보병연대(쌍용부대) 제2대대 소총소대 정보과에 배속되어 정보상황병으로 복무하였습니다.

 

이후 1971년 1월에 34개월(2년 10개월)의 복무를 마치고 상병으로 만기 전역하였습니다. 현역 일반병 출신 대통령은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 두 명뿐입니다. 최종 계급은 상등병이었으며, 병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이유는 베트남 전쟁에서 귀환한 병장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당시 병장은 분대장에게만 주어지는 계급이었으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특별 케이스로 병장 계급이 부여되었습니다. 현재는 이 시기의 상병 만기 전역자들이 병장으로 변경되는 제도가 생겨 노무현 대통령도 유가족이 신청하면 병장으로 변경 가능합니다.

 

전역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사법시험 준비에 매달렸습니다. 1973년경 약혼자가 결혼 적령기를 넘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영부인 권양숙 여사와 결혼하였으며, 아들 노건호도 낳았습니다. 이때 둘째 형 노건평이 세무 공무원으로 취직한 뒤 경제적 상황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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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부터 사법시험을 보기 시작한 노무현은 1975년, 한국 나이로 30세, 만 28세의 나이에 사법시험(17회)에 합격하였습니다. 이는 고졸 출신으로는 안대희 전 대법관과 더불어 단 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대희는 고졸이 아닌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분류되었습니다. 7기 연수생으로 사법연수원에 입학한 그는 60명 중 47등으로 수료하였습니다.

 

이때 7기 연수생 중에는 안대희 전 대법관과 진영 국회의원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모여 참여정부 이후 '8인회'로 불리게 된 것은 공식적인 조직이 아니었지만, 이들 사이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변호사로 수입을 올리고자 했지만, 형과 어머니의 권유로 판사로 임용을 신청했습니다. 1977년에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었으며, 판사 시절을 회상한 기록에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법조인 시절: 1977년 ~ 1988년

대전지방법원에서 7개월간 판사로 근무한 후 경제적인 문제로 사임했습니다. 이는 1992년 명예훼손 사건과 관련하여 경제적인 이유로 판사직을 사임했다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1978년 5월에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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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전문 변호사로, 소위 잘 나가는 변호사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거의 개업한 변호사가 없었던 시절에 법무사들의 반발을 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형사사건을 조금 맡다가 이후 민사사건을 주로 맡았으며, 등기업무까지 취급하여 부산지역 법률계의 반발을 샀습니다.

 

이러한 변호사의 활동은 부산 상고 출신으로 세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81년, 김광일 변호사의 부탁으로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게 되면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노무현은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선배 변호사 김광일의 권유로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려 두었지만, 재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치기 어린 젊은이들이 사고를 친 것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중 한 명을 면회하는 과정에서 고문 흔적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이 사건에 미친 듯이 매달렸습니다.

 

재판에서도 변호인단 중 가장 서열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부림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거의 피고인인 것처럼 열성으로 나서서 변론을 하였으며, 고문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고, 때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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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들과 그 가족들도 재판 초반에는 변호사가 그렇게 흥분해서 변론을 해도 되나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호사에게 신뢰와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일부 피고인들이 완전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노무현은 본격적으로 재야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이후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해 법률 상담을 해 주거나 무료 법률 상담소를 개설하여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각종 민주주의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의 사무실은 늘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이 당시 유명했던 표현 중 하나가 '아스팔트 민주주의'인데, 이는 노무현이 만든 말이었습니다.

그는 연설 중 전경의 최루탄을 맞고 기절하는 일까지 겪었지만 마이크를 놓지 않고 꾸짖는 연설을 했고, 이에 관한 이미지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검찰에 구속되었고, 안기부는 변협에 압력을 가해 그의 변호사 면허를 강제 정지시키고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등 불법으로 수시로 감시를 했지만, 직후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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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변호사 시절 부산 서구에 노동 법률 사무소를 열어 운영할 때 만나 의기투합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문재인이었습니다. 노무현의 고시공부 동지이자 연수원 동기인 박정규가 문재인을 소개시켜 준 인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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