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 철수작전은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6일까지 1950년 6.25 전쟁 중인 흥남 지역에서 진행된 작전으로, 미군 10군단, 대한민국 국군 1군단, 그리고 약 100,000명의 피난민이 흥남에서 철수하는 작전이었습니다.
작전이 시작되기 전, 1950년 11월 말에 유엔군은 북진통일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8군이 중공군에게 큰 손실을 입은 후, 11월 30일에 미10군단은 함흥-흥남 지역으로 후퇴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동안, 미10군단의 제1해병사단은 중공군 9병단에 포위되어 장진호 전투에서 손실을 입고, 미10군단 전체가 중공군에게 포위되는 위험이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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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엔군은 12월 8일 흥남에서의 철수 명령을 내렸으며, 이 작전은 12월 15일에 미 제1해병사단을 시작으로 미10군단 전체가 흥남으로 집결하고, 해상을 통해 부산으로 철수하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것이 1.4 후퇴의 첫 단계였습니다.
흥남을 통해 해상 철수를 선택한 이유는 함경도 전역이 이미 중공군의 손에 넘어갔고, 12월 9일에 중공군이 원산을 점령하여 육로로 철수하는 길이 끊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유엔군 사령부는 흥남항 부두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설정하고, 미 해군의 지원을 받아 유엔군과 한국군이 철수를 준비했습니다.
흥남부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미군 지휘부는 피난민을 태우기를 꺼렸습니다. 피난민을 태우는 것은 시간이 걸리며 미군의 희생을 증가시키고, 수송선도 부족했으며, 스파이의 위협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군 지휘관들과 현봉학 박사, 에드워드 포니 대령 등의 노력으로 결국 피난민을 태우기로 결정되었으며, 약 100,000명의 피난민이 배를 타고 흥남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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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철수작전의 성공으로 현봉학 박사, 에드워드 포니 대령, 알몬드 장군,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 등 여러 사람들이 6.25 전쟁의 영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월 19일부터 민간인 철수가 시작되어 24일에 마지막 배가 떠났으며, 피난민들은 거제도 장승포항으로 하선되었습니다. 특히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많은 피난민을 태운 상선으로 유명합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7,600톤의 빅토리급 수송선으로, 건조된 지 약 5년 정도 된 상선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배는 일본 출발 시 항공유를 가득 싣고 왔지만, 흥남에 짐을 내리지 못하고 부산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짐을 내리지 못하고 흥남으로 돌아와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탑승한 피난민 수송을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다른 선박들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화물의 내용을 알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피난민을 태우지 않아도 되었지만, 선박에 여전히 항공유 등의 화물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너드 라루 선장은 가능한 한 많은 피난민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배에는 아직 300톤의 항공유가 남아 있었지만, 14,000여 명의 피난민과 17명의 육군 헌병이 승선한 후, 12월 23일에 흥남을 떠났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국군과 UN군으로 인해 하선이 거부되어 거제도 장승포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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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일간의 항해 끝에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며, 이 배에서 5명의 신생아가 태어났습니다. 또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아닌 LST를 타고 거제로 피란한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의 부모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대규모 철수 작전은 193척의 선박을 동원하여 거의 피해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100,000명의 피난민이 함께 구조되었습니다. 작전 종료 시, 흥남부두와 함께 선박 시설은 폭파되었으며, 12월 24일에 흥남을 떠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미 10군단은 어떠한 공격도 받지 않고 성공적으로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이 작전 중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탑승한 피난민은 100,000명 가량이었고, 다른 피난민들 중 일부는 다른 수송수단을 이용해 철수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전체 인원 중 절반 가까이가 철수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추가적으로, 피난민의 종류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았고, 가장 확실한 신원을 가진 피난민은 미군과 국군과 함께 행군하며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어진의 외부에 위치한 피난민 중 중공군이나 북한군과 접촉 가능한 경우, 방어진을 구성할 때 내부 출입을 금지했으며, 철수 시에도 군대가 반드시 철수 후 일정 거리 이상으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것만 봐서는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래의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조치로 간주되었습니다. 피난민의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확실한 정체 확인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외모만으로 사람의 국적이나 소속을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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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과 한국군을 혼동시키는 주요 이유였습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어진으로 들어온 피난민들 중에서 스파이 행위로 의심되거나 파괴 활동을 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이는 6.25 전쟁 중에 빈번히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이미 전쟁 초기부터 이러한 이유로 인해 피난민은 정체가 확인되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흥남 교두보 형성 이전에 교두보 내부로 들어온 피난민들은 최대한 구출되었지만, 교두보가 형성된 후에는 외부에 있던 피난민들은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 스파이로 의심될 경우 교두보 붕괴로 인한 대량 피해를 우려한 UN군에 의해 교두보로의 진입이 제한되었습니다.
또한, 흥남 교두보의 경계선에서는 육해공의 화력을 집중시키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므로, 피난민을 내부로 들여보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현재 아수라장의 격전 중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전선 내부로 들여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필요도 없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피난민 간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이유로 흥남 교두보 내부에 있는 피난민 대부분은 구출되었지만, 외부에 있던 피난민들은 교두보 밖에서 발을 매달아야 했습니다. 흥남 철수 작전으로 98,000명을 구출했지만, 교두보 외부에 있어서 미군을 따라 온 인원도 그 정도로 많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원은 결국 탈출에서 제외되어 흥남에 남게 되었고, 흥남에 남은 피난민 중 일부는 고향에 돌아가도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탄압을 받고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전쟁 이후 가톨릭 수도회 베네딕토회에 가입하여 수도자가 되었고, '마리너스'라는 수도명을 받았습니다.
마리너스 수사는 평생동안 흥남 철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고 조용히 수도생활을 하다가 2001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행적은 사후에 알려졌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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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너스 수사가 지내던 미국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은 2000년경 경영난으로 폐쇄 직전이었는데,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한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지원을 받아 복구되었습니다. 이는 원래 원산 옆에 있는 덕원에 위치했던 수도원의 사연과 관련이 있습니다.
2017년부터 마리너스 수사에 대한 시복(복자품에 올림) 절차가 미국 가톨릭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2021년에는 라루 선장을 성인으로 시성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미국 천주교 교회는 라루 선장과 조지프 버비스 러플로 신부에 대한 지역 교구의 성인 추대 절차를 승인했으며, 이 승인을 통해 라루 선장은 시복을 위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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