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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사건사고

'고문은 예술이다.' 군사독재시절 악랄한 고문기술자 이근안

by CleanHub 202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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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은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이자 목사로, 독재정권 시기에 공안경찰(현 보안경찰)로 재직하며 많은 사람들을 가혹하게 고문한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얻었습니다.

 

노덕술이 일제강점기 친일 고문 경찰을 대표했다면, 이근안은 군사독재 시기에 활동한 고문 경찰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로 꼽히며, 그의 고문 기술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근안은 1938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나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젊은 시절에는 공군 헌병으로 근무했습니다. 1970년에 경찰로 입대한 후 신원을 숨기고 대공 분야에서 활동하며, 1984년에 경감까지 특진하여 경찰 내에서의 높은 지위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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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은 고문 기술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의 악명은 민주화운동 단체와 무고한 시민, 민주화 운동가들을 가혹하게 고문했다는 증언에 의해 악화되었습니다.

 

그는 군사독재 시기에 대공 경찰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김근태를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을 고문하였으며, 1979년 남민전 사건 관련자인 이재문도 이근안과 다른 수사관들에게 고문을 당한 후 1980년 12월에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또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이근안은 경기도경찰국 공안분실장으로 재직하였으며, 1986년에는 화성경찰서로 발령되어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화성경찰서에 대공용의점을 찾아보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도 엉뚱한 사람을 고문해 죽이는 일이 다수 있었으며, 화성 연쇄살인 사건 때도 엉뚱한 고문을 가하면서 사건 해결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고문기술자 이근안

이근안은 민주화운동 이후에도 안보강사로서 활동하며 각 기업 직원연수회 등에서 안보강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시상과 표창을 받은 인물로서, 조선일보로부터 청룡봉사상을 수상하였으며, 경찰 내에서도 16번의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경감으로 특진되고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은 일들이 있으며, 이근안은 그의 고문 기술로 인해 경찰 내에서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근안은 당시 고문피해자 김근태에 대한 고소가 있었으나 김근태조차 그의 실명을 알지 못하고 '성명불상의 전기고문 기술자'라고 기록해야 했습니다. 이근안은 조서나 진술서 작성 시 항상 국어사전을 소지하고, 모르는 한자는 찾아서 적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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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근안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 및 진술서 등에는 한자로 적힌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글씨체는 백강고시체와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어, 백강고시체는 고시 시험 시간 내에 빠르게 글을 쓰면서도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쓰는 필체로 적합하며, 여전히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되는 글씨체입니다.

 

이근안과 같은 고문 기술자들은 신분과 신원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름 대신에 직책명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원조차 알 수 없는 수사관들이 많았으며, 고문 피해자들은 때로 그들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 수배하려고 했지만, 경찰에 잡힌 사람 중에서는 이근안과 같은 고문 기술자는 극히 소수였습니다.

 

또한, 그들이 고문을 가하는 방식은 몽둥이로 때리는 것 이상으로 가혹하고 악랄했으며, 간첩 혐의로 잡힌 사람을 고문하는 경우에는 자백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구타하고 다양한 고문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고문기술자 이근안

고문에 대한 기술은 몽둥이로 구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물고문, 전기고문 등 다양하게 시행되었는데, 이근안은 후술된 바와 같이 사람의 성기에 볼펜이나 샤프심을 쑤셔넣거나 관절을 으깨서 뽑아내는 등 극도로 가혹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가혹하게 고문당하던 피해자들은 실신하면 소금물을 먹이고 다시 고문을 가하는 등 당시의 상황은 매우 비참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근안과 그와 유사한 고문 기술자들은 수십 년 동안 그들의 고문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지 않은 동안 고문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 각종 단체가 노력하여야 했습니다.

 

이근안은 공안 사건에서 종종 "고정간첩으로 활동해 왔다"는 거짓 자백을 하고 나서 고문을 멈춘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연행자들 앞에서 사과를 으깨서 보이며 위협적인 말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심리적인 협박에도 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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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와 김근태 같은 고문 피해자들은 이근안의 가혹한 고문을 겪었으며, 이 고문에 대해 민병두는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은 이근안은 선데이 서울을 보면서 전기고문의 볼트(V) 수를 올렸다 내렸다. 나 역시 온갖 종류의 고문과 잠 안 재우기 등의 고문을 당하고 동료들의 소재지를 댔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겪은 고문 피해자들은 극도의 고통과 수치를 겪었고, 김근태는 이를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치욕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김근태가 이근안을 면회하고 용서를 했지만, 이에 대해 혼란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근안이 고문을 가한 고문 피해자 중 하나인 김성학 역시 고통스러운 고문을 겪었으며, 결국 척추 디스크가 다 녹아내려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김성학은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북파부대에서 특수 훈련을 받은 경험을 가졌고, 이런 훈련을 통해 힘들게 참을 수 없어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고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고문기술자 이근안

당시의 훈련과 고문은 매우 가혹하며 안전장치나 생명 존중이 더 우선시되지 않았던 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근안은 병영 내에서 훈련과 고문을 가해서 굴복시킨 사례로, 그 당시의 현실에서는 생존을 위해 매우 힘들게 훈련을 견뎠던 병사들을 극도의 압박과 가혹한 고문을 통해 굴복시킴으로써 인간 병기로서의 능력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현대의 군사 훈련과 인권 측면에서 큰 변화가 있도록 이끌어야 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근안은 고문 피해자들을 물리적으로 고문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협박하고 위협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그의 고문 기술과 고문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그 시대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근안의 고문 기술은 미세한 신체 반응을 악용하여 고문을 가하는 끔찍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거짓 자백을 하게 되어 간첩로 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그 후에도 후유증을 겪고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고문 후유증은 몇몇 사람에게는 생명까지 앗아갔고, 민주화 이전까지 경찰 및 정보 기관의 감시를 받는 등 그들의 삶을 크게 어렵게 했습니다. 그의 악명 덕분에 어둡고 힘들었던 시기의 기억과 후유증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근안의 고문 기술은 친일 경찰 출신인 강우규 의사와 같은 전 제국주의강점기의 친일 경찰 출신 고문자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근안는 그들을 포함하여 고문 기술자 중에서 악명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그의 고문은 특히 다양하고 고도로 가혹했으며, 그의 기술은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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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은 이근안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고문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며 그의 고문 행각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10년 10개월 동안 도피한 후 1999년에 자수하여 실형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그의 도피 생활과 수사 과정,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수까지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그의 형량이 결정되었습니다.

 

이근안은 최종적으로 2000년에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확정받았고, 2006년에 만기 출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으며, 공로로 수여된 옥조근정훈장도 박탈되었습니다. 이로써 그의 사건은 그의 인생을 바꾸었고, 한국 역사의 어두운 챕터 중 하나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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