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는 1999년 6월 30일에 발생한 대형 화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 궁평항 인근에 위치한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이라는 청소년 수련원에서 발생했습니다.
해당 수련원은 1998년 초에 영업을 시작하여 1999년 3월에 수련원 인가를 받았으며, A, B, C동으로 구성된 총 부지 면적이 11,606m²이고 건축면적은 2,576m²로 분리되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C동 건물은 1,762m² 규모로, 1층은 콘크리트 건물이었고, 2~3층에 컨테이너 52개를 쌓아 외벽은 목재, 지붕은 샌드위치 패널로 마감된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총 59개 객실에 630명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건물 내부의 안전성이 미흡했던 것입니다. 건물 내부에 사용된 컨테이너의 재질이 안전하지 않았고, 화재 경보기와 소화기가 작동하지 않았으며, 샌드위치 패널의 설계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매우 위험한 독가스를 발생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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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원인 규명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초기에는 모기향이 화재의 원인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나 화재 실험 결과와 유가족들의 의구심으로 인해 전기 누전이 화재 원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화재 원인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였으며, 화재의 책임 소재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유가족들은 사고 발생 후 정부 및 당국에 대한 분노와 의문을 표했으며, 화재 원인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화재 원인을 둘러싼 논쟁과 조사가 계속되었습니다.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는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과 화재 현장까지의 거리, 통신 인프라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희생자 수를 늘린 심각한 화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많은 인명 피해와 소방 및 구조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화재 원인 규명에 대한 정부의 엉터리 조사로 인해 유족들은 분노하였고, 이중에는 대통령 훈장을 받은 김순덕 학부모도 포함되었습니다.
김순덕은 분노하여 체육훈장을 반납하겠다고 선언하였고, 이로 인해 김종필 총리와의 면담 기회를 얻었으나 재수사가 약속된 것처럼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뗀 적이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김순덕은 정부의 방침과 현실에 실망하고 훈장을 반납하고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주(국적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화재의 발생 지역이 무선통신 난청 지역이었기 때문에 화재 현장에서의 신고가 늦춰졌습니다. 당시 핸드폰이 아직 보급 초기 단계였고, 지방 지역에서는 통화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선통신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해 소방서에 화재 신고가 늦게 접수되었고, 소방 인력의 출동도 더디었습니다.
또한, 화재 현장까지의 거리가 먼 고속도로를 지나야 했고, 화재 현장이 도시 밖의 농어촌 지역이었기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도로 폭도 좁아 소방차가 도로로 진입하기 어려웠고, 도로 상태도 좋지 않아서 화재 현장까지 도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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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발생 이후 40분이 지난 뒤에야 소방 인력이 도착할 수 있었고, 그 동안 화재가 확산되었습니다. 소방차도 노후차량이 대부분이었으며, 도로 상태와 거리 때문에 진화 및 구조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여러 요인으로 화재 현장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희생자 수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화재 대응 및 소방시설의 미흡함은 이 사건이 대규모 재난으로 번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사건 당시 송 관장은 화재가 발생한 것을 눈치채고 긴급하게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대처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러 다른 유치원, 학원, 초등학교 선생님들 역시 혼란에 빠져 있던 아이들과 함께 송 관장의 소리를 듣고 즉시 행동에 옮겨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솔하였습니다.
또한, 소망유치원에서 남은 어린이들 역시 다른 선생님들의 노력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이로써 521명의 아이들이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망유치원에서는 301호실에서 잠자던 어린이 18명이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이는 이 방에 같이 자던 아이들이 불길로부터 안전하게 대피하지 못했고, 이 방에 대한 인솔교사들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해당 유치원의 인솔교사들 중 일부는 다른 방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314호와 301호는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초기 발화 지점은 301호였으므로 빨리 화재 상황을 알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솔교사들은 화재를 알지 못했거나 불이 났어도 대응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조사 결과, 일부 인솔교사들은 화재가 발생한 시기에 바깥에서 술과 삼겹살을 먹는 등 무책임한 행동을 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로써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있지 않았으며, 술에 취해 있었던 교사들은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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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301호에 있던 어린이들은 어둠 속에서 불길을 피해 나오지 못하고 질식하여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에서는 초등학교 교사 한 명과 레크리에이션 강사 3명도 아이들을 구하려고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지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많은 인명 피해와 비극을 야기하였으며, 이후의 조사와 소송에서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3층에서 투숙하고 있던 소망유치원 이외에도 2층에서 투숙하고 있던 부천 이월드영어학원에서도 한 명의 유치원생이 희생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어린이를 돌보는 유아교사가 어린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희생자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신원 확인에 약 2달이나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치아 대조, 유전자 감식, 병원 진료 기록 확인 등을 통해 7월 3일에 신원 확인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은 대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두 개의 방에 각각 1명씩의 인솔교사와 함께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솔교사의 행동으로 몇 명의 어린이들이 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희생자도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으로 인솔교사 김영재 교사와 레크리에이션 강사 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의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이 끝난 후 유치원 아이들이 갇혀 있던 방으로 들어갔을 때, 문에는 손톱 자국이 있었으며, 아이들의 시신은 창문 아래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소방관들에게 어린이들이 느낀 공포와 절망을 상기시켰습니다.
경찰 조사에서는 씨랜드와 화성군청 간의 다양한 비리 사실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분노 여론이 전국적으로 높아졌습니다. 건축주 및 수련원장인 박재천을 비롯해 공무원 및 화성군수에 대한 구속 영장이 신청되었으며, 사건 당일 술을 마신 인솔 교사들도 모두 구속되었습니다. 부지 소유주 김씨는 불구속 입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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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고 책임자인 김일수 전 화성군수는 사임한 뒤 무혐의 판결을 받아 지역에서 평온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김일수 전 화성군수가 조사를 받던 중 병원에 입원한 후, 그를 보호하겠다는 화성농촌문제 연구회 및 지역 4H 소속원 300명이 몰려가서 병실을 지켜주면서 기자들을 내쳤다는 점입니다.
씨랜드 원장인 박씨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금고 5년을 선고받았으며, 전 소망유치원 원장 천씨는 금고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이들의 형량은 감소하여 징역 1년과 금고 4년으로 줄었으며, 2001년에 출소하였습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이송되었으며, 분향소는 서신면사무소 3층 회의실과 서울강동교육청에 마련되었습니다. 합동 영결식이 엄수된 후, 시신은 벽제화장장(현 서울시립승화원)에 화장되었으며, 이후 유골은 동해로 뿌려졌습니다. 2001년에는 서울 마천동 어린이안전공원 내에 추모비가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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