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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사건사고

일제강점기 반민족 친일 인간쓰레기 고문기술자 하판락

by CleanHub 202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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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판락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독립운동가와 기독교도를 가혹하게 고문하며 나쁜 평판을 얻었던 친일 경찰이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처벌을 받지 않고 부유한 사업가로 살아갔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친일파와 인간 쓰레기로 여겨졌습니다. 그 시기에는 박처원과 이근안과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일제강점기에는 김덕기, 김태석, 노덕술, 그리고 하판락이 있었습니다. 그의 창씨명은 카와모토 한라쿠와 카와모토 마사오이며, 본관은 진주였습니다.

 

하판락은 1912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형제로는 동전 하영락과 남동생 하충락이 있었습니다. 그의 형은 공무원으로 일했고, 남동생은 일본으로 유학하고 좌익 운동에 가담했다가 6.25 전쟁 당시에 월북했습니다.

 

진주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중에는 학생 시위에 참여하여 진주형무소에 갇혔던 경력도 있었고, 졸업 후에는 진양군청에서 근무한 뒤 경찰로 입사하여 일본 제국의 경찰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며 승진하고, 경찰서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940년에는 창씨개명령에 따라 이름을 '가와모토 한라쿠'로 바꾸었으나, 이듬해에는 완전한 일본식 이름 '가와모토 마사오'로 다시 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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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판락은 독립운동가, 기독교인, 공산주의자 등을 고문하여 '고문 경찰'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그의 고문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는 당시 항일 투사들이 가장 두려워한 경남 고등경찰 3총사로 꼽혔습니다. 그의 별명은 '고문귀'(고문 귀신)였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판락의 악행에 대한 또 다른 고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고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새로운 증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판락은 1943년 3월에 경상남도경찰부 고등과 경부보로 잔류 중에 있었을 때, 1942년 5월에 군사 시설 및 군수 공장을 파괴하고 항일 전단을 배포하며 군자금을 모금하는 목적으로 비밀 결사를 조직한 "친우회 불온 전단 사건"으로 검거된 이광우 등 7~8명을 고문했습니다.

 

이 사건에 여경수도 연루되었는데, 하판락은 이 사회주의자들의 항일 운동을 친우회 활동과 연결시켜 "청소년들도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기성 사회주의자들이 청소년들까지 포섭하여 불온 전단을 배포토록 사주했다."고 날조한 후 이들을 고문했습니다.

하판락은 여경수인 이광우에게 자백을 강요하다가 그가 거부하자, 그의 온몸에 화롯불로 달군 쇠젓가락을 사용했고, 구타, 전기고문, 물고문, 머리카락 뽑기, 손가락 비틀기, 압슬 고문 등을 가하며 여경수는 3년 후, 해방 직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때 하판락은 당시 17세인 이광우에게 고춧가루 물고문을 가하고, 이 광복 후에 몸을 회복하는 데에 1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잔인한 고문 덕분에 여경수인 이광우와 같은 사건 관련자들의 운명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신체 불구자가 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재판을 거쳐 4년 이상의 감옥 생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판락의 죄악이 이로써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착혈 고문'이라고 불리는 악행도 저질렀습니다. 이 극악한 행위는 독립운동가에게 자백을 강요하며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참혹한 행위였습니다.

 

또한, 하판락이 고문을 저질렀지만 해방 이후에도 그의 운이 더욱 좋았습니다. 그는 미군정의 '일제 관리 재등용 정책'에 따라 경찰로 일하며 미군정 제7경찰청 회계실 주임으로 근무하면서 일본인 적산 재산 처리에 관여하여 더욱 부유해졌습니다.

 

그리고 1946년 6월에는 경남 경찰청 수사과 차석으로 승진하여 일제 고등경찰로서 '실력'을 발휘하였으며, 그 뒤에 경찰직을 그만두고 미군정 도경찰부에서 회계업무를 시작하여 더욱 부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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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판락에 대한 역사적인 단죄가 1949년에 찾아왔습니다. 이때, 독립투사 여경수의 어머니가 그를 고발하여 부산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으며, 이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판락을 체포한 반민특위가 서울로 이송하려 했을 때, 부산 시민들은 "당장 여기서 우리들이 처리하겠으니 맡겨 달라"며 반발하였으며, 이 사건은 당시 고원섭이 쓴 <반민자 죄상기>에도 기록되었습니다.

 

하판락이 체포되자, 독립투사 이광우는 반민특위로부터 증인 소환장을 발급받아 하판락의 아버지가 이광우의 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건네며 "당신 아들이 하판락을 모른다고만 해 달라"는 요구를 했던 사실을 고발하였습니다.

 

이에 이광우의 아버지는 이런 요구를 거부하였고, 이광우 또한 이 사건을 듣고는 매우 격분하였으며, 하판락을 만나러 가서 주먹다짐을 하며 싸움까지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판락은 반민특위에 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지만, 자신이 저지른 독립투사 살해 및 착혈 고문 사실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1949년 6월 6일에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반민특위가 사실상 무력화되었고, 이로 인해 하판락은 1949년 8월 26일에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습니다.

 

이후 하판락은 자신의 모교인 진주고등학교 동창회 감사를 지낸 뒤, 1956년 지방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그 이후 부산시의회 의원 선거에 도전하였지만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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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판락은 일제강점기부터 형성한 재력을 이용하여 금융업을 시작하고 신용금고를 설립하며 목재사업도 진행하여 큰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이 돈으로 고향에 기금을 기부하거나 기부금을 제공하는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쳤으며, 노인복지 공로자로도 인정받아 부산에서는 대한노인회 수영구 지회장을 역임하고 1999년 어버이날에 부산시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판락의 친일 행적은 독립투사 이광우의 아들인 이상국의 노력과 이광우의 증언으로 다시 한 번 공론화되었습니다. 이상국은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10년 동안 제대로 된 기록을 찾지 못했던 상황에서 우연히 하판락을 알게 되었고, 1999년 10월에 KBS 기자들과 함께 하판락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이때 하판락은 이광우를 체포했다는 것만은 인정하였으나, 이광우에게 가한 고문에 대해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증언으로 인해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던 기사와 이광우의 반민특위 증인 출두 서류와 함께 아버지의 독립운동 공적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판락은 친일 경찰로서, 그의 과거 친일 행적이 재조명되면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이광우 선생이 2000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애족상을 받는 등 국가적으로 존경받았을 때, 하판락의 친일 죄상과 고문 사실이 다시 빛을 본 결과, 국민적인 공분과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1월 17일, 하판락은 정운현 대한매일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경의 간부를 지낸 과거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나로 인해 피해를 본 분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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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00년 12월에 하판락의 고향 명석면에서 발간된 <명석면사>에서 하판락의 친일 죄상이 모조리 삭제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진주 하씨 문중의 반발로 인해 일어났으며, 명석면사를 쓴 김경현이 하판락에 대한 내용을 삭제하도록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판락에 대한 내용은 삭제되었지만, 김경현은 편찬 후기에 '명석면 출신자 중에 반민특위 관련자에 대해서는 면사편찬위의 결의로 삭제했다.'라고 기록하며 시간차 공격을 가했습니다.

 

이후 하판락은 2002년에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2002년 3월에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비추며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2003년 9월 11일에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9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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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적인 고문 기술자나 반인륜 범죄 주요 인물 중 일부가 별다른 처벌 없이 사업가로 성공한 사례가 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게슈타포 전범 클라우스 바르비, 우스타샤 전범 딘코 사키치, 아이티의 비밀경찰 통통 마쿠트의 수장 루크네르 캉브론, 홍위병의 수장 격인 쑹빈빈, 오스트리아의 UN 사무총장인 쿠르트 발트하임 등이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그의 과거 친일 행적이 재조명되었거나 국제적으로 비난받아 정계에서 소외되거나 몰락한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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