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원조 아이돌 출신 가수가 있습니다. 그 시기의 아이돌 중에서도 아이유를 뺨치는 미모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 혜은이 선배님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혜은이 누님은 1954년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도 악극단의 단장이자, 현재로서는 기획사 대표의 딸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는 제주에서 자랐다가 일곱 살 때 대전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대전에서의 학창시절을 보낸 후, 70년대 중반에는 극장식 호프집과 비어극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우연한 기회로 유명 작곡가 길옥윤과 만나게 되어 1975년에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가수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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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곡은 처음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1년 뒤에 히트를 치며 그녀는 신예 스타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혜은이'라는 예명은 길옥윤 선생님이 처음에 '이은혜'로 짓고자 했으나 너무 평범하고 밋밋해서 '혜은이'로 바꾸었는데, 그녀의 요정 같은 이미지와 잘 어울렸으며, 당시 대중들에게 주목받기에 딱 좋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혜은이 누님은 처음부터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소녀 가장으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노래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혜은이 누님은 무수한 곡들을 발표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 중에는 '당신만을 사랑해', '진짜 진짜 좋아해', '뛰뛰빵빵', '감수광', '제 3한강교', '새벽비' 등이 있습니다. 특히, 1977년에 발표한 3집 앨범 '당신만을 사랑해'는 길옥윤과 혜은이가 함께 만든 명반이었고, 이 음반은 대박을 치며 혜은이의 톱스타로서의 지위를 높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가요계는 트로트와 미국식 스탠더드 팝이 주를 이루었는데, 혜은이의 3집 앨범에 수록된 10곡은 작곡가 길옥윤의 일본식 스탠더드 팝의 새로운 편곡법을 도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음악들은 혜은이의 청아한 목소리와 잘 어울려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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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이 누님은 1977년과 1979년에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가수왕과 최고 인기가수상을 비롯해 다수의 가수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기록을 남겼으며, 1집부터 14집까지의 타이틀곡들이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또한, 그녀는 1977년에는 일본 '야마하 가요제'에 출전한 적이 있으며, 일본 '빅터 레코드사'에서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신만을 사랑해'를 일본어 음반으로 발표하고, 일본 활동도 짧게 했는데, 당시 일본 방송에서는 혜은이를 "강코쿠노 아이도르" 즉, "한국의 아이돌"로 소개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아이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런 의미에서 혜은이는 "한국의 아이돌"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아이돌 문화가 섬나라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1977년, 혜은이는 국내의 모든 가수상을 휩쓸며 한 해를 압도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 뒤인 1978년에는 '태평양 가요제'에서 입상하고, 1979년에는 영화 '제 3한강교'의 주제가를 발표했습니다.
이 시기의 대한민국 경제 상황은 수출을 통한 경제 성장의 시기였으며, 1970년부터 1979년까지 연평균 9.6%의 고도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 기간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1975년에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인 현대 포니가 생산되는 등, 자본 집약적인 중화학 공업 중심의 경제 성장이 추진되어 한국 경제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성공한 경제 개발 모델로 주목받았습니다.
이러한 경제발전과 함께, 혜은이 누님은 경부고속도로 옆 공터에서 '뛰뛰빵빵'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제 3한강교' 노래를 그 다리에서 직접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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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는 50~60년대를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살아온 국민들의 삶이 개선되기 시작했으며, 삶의 질도 향상되면서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꾸미고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3한강교'의 디스코 열풍으로 혜은이에게 열광하는 '언니부대'가 생겨나며 여성 팬들은 그녀의 패션과 헤어 스타일을 모방하며 유행을 창조했습니다.
특이하게도, 혜은이는 그 당시 남성 팬보다 여성 팬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이미지가 보이쉬하면서도 목소리는 미성에 가깝고, 나비 넥타이와 턱시도를 입고 무대에 나오는 중성적인 느낌 때문으로 설명됩니다.
혜은이는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최고의 인기 가수로서 활약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1984년에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한 뒤, 1988년에 성격 차이로 이혼하고 이후 배우 김동현과 재혼하여 잉꼬부부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사업 실패와 빚보증 여러 번의 사기 사건으로 인해 200억 가까운 빚을 지게 되면서 혜은이 누님은 빚을 갚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부르는 힘들고 고달픈 삶을 견뎠습니다.
마침내 2019년 7월에는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그녀의 소식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그녀의 과거 영상을 찾아보며 역주행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혜은이 누님의 '파란나라'를 카세트 테이프로 듣고 학창 시절 공책에 가사를 적어 외워 부르며 그녀의 노래에 즐거움을 느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에는 TV와 라디오를 통해 혜은이 선배님의 노래를 듣는 즐거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 노래 가사들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고,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며 따라 부르게 되곤 했습니다.
특히, 2014년에 혜은이 선배님이 처음 디너쇼를 개최했을 때, 예전의 그 모습을 보고 "와~ 혜은이 진짜 아름답다. 여신 같아~" 라며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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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노래들을 다시 들어보면 어릴 때와는 느낌이 다르며, 그 감동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예전 노래를 들으면서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추억을 찾고, 그곳에서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들도 가끔은 예전 노래를 들으면서 추억을 회상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혜은이 선배님은 최근 4월에 데뷔 45주년을 기념하여 '그래'와 '재회' 등의 신곡이 수록된 미니앨범을 발표하셨습니다. 이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은 2008년에 홍서범이 부른 '그래'를 그녀와 함께해온 팬클럽과 함께 리메이크하고 함께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7080년대 희대의 아이돌이자 인기 가수로서 빛나는 성공을 거뒀지만,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혜은이 선배님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최선을 다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를 응원하며 새 앨범의 성공과, 코로나가 해소되어 연말에 멋진 혜은이 디너쇼 무대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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