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속에서 불은 강력한 힘을 상징하며, 때로는 파괴적인 무기로 사용되어 왔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불은 간단한 도구만으로도 쉽게 일으킬 수 있는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었죠.
부싯돌과 마른 풀만 있다면 순식간에 불길을 만들 수 있었고, 바람의 도움을 받으면 그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바람의 방향은 때때로 불길을 아군에게로 향하게 하여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죠.
통제할 수 없는 불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은 당연하지만, 가스레인지나 라이터처럼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듯이, 인류는 오랫동안 원하는 목표만을 정확하게 태울 수 있는 '통제된 불', 즉 소이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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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무기는 목표물을 불태워 파괴하는 무기를 통칭하며, 화염방사기나 소이탄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고대 동로마 제국에서는 '그리스의 불'이라는 비밀스러운 물질이 사용되었고, 중국에서는 '맹화유계'라는 초기 형태의 화염방사기가 등장하여 전쟁에서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그리스의 불 제조법은 영원히 사라졌고, 맹화유계 역시 화약 무기의 발달로 인해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죠.
오랜 시간 동안 자취를 감췄던 소이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러 다시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당시 개발된 소이탄은 타르를 먹인 헝겊이나 티슈에 화약을 혼합한 형태로, 짧은 시간 안에 주변을 완전히 불태워버리는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크기의 화염방사기들이 개발되어 적들에게 극심한 공포감을 심어주었죠.
하지만 소이탄은 멀리 떨어진 적을 공격할 수 있었던 반면, 사거리가 짧은 휴대용 화염방사기나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거치형 화염방사기는 심리적인 효과는 컸지만 실제 전투에서의 효율성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참호전이 끝난 후에도 화염방사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벙커나 땅굴에 숨은 적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고, 심지어 전차에 탑재되어 적들에게 '지옥불'의 공포를 실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미국은 소이무기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라텍스를 첨가하여 더욱 끈적거리고 오래 타도록 만들었지만, 일본이 동남아시아의 고무 농장을 점령하면서 라텍스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라텍스는 고무나무 껍질에서 얻어지는 우유 빛 액체, 즉 천연고무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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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난관에 직면한 미국은 유기화학자 루이스 피조와 그의 연구팀에게 라텍스를 대체할 새로운 물질 개발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깁니다. 비타민 K 합성, 염료 개발, 코르티손 연구 등 화학 분야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피셔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발명품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이듬해 미국의 화학무기 개발 부서는 피셔에게 새로운 물질에 대한 비밀 연구를 제안했고, 피셔와 그의 팀은 1942년 4월 중순, 휘발유와 섞이면 끈적거리는 성질과 강력한 가연성을 동시에 갖는 분말 형태의 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 피셔의 동료 중 한 명이 "인(Phosphorus)을 첨가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 작은 제안이 훗날 인류에게 끔찍한 재앙을 가져올 '마법의 주문'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이 물질은 1942년 7월 4일, 하버드 경영대학원 근처 축구장에서 첫 실험을 거쳤고, 이후 여러 장소에서의 추가 실험을 통해 성능을 확인한 후, 1943년 12월 15일 파푸아뉴기니에 처음 배치되어 소이무기의 연료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이때 세상에 등장한 이 분말이 바로 '네이팜'이며, 휘발유와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평범한 가루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네이팜을 가득 채운 폭탄이 바로 '네이팜탄'으로, 네이팜탄은 1944년 3월 6일 미군이 베를린 폭격에 처음 사용했으며, 특히 개발의 주 목적이었던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그 무서운 위력을 드러냈습니다. 사이판, 이오지마, 필리핀 등지의 일본군 벙커나 땅굴 공격에 네이팜탄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고,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해군과 공군을 가리지 않고 지상군 지원을 위해 투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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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4월, 둘리틀 특공대의 일본 본토 공습을 통해 일본의 군사력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판단을 내린 미국은, 1944년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가 실전에 배치되자 도쿄를 초토화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이미 미국은 1943년 5월부터 9월까지 일본의 전통 가옥 구조를 정밀하게 재현한 실험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소이탄 투하 실험을 진행했고, 이 실험을 통해 네이팜탄이 다른 어떤 소이탄보다도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화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3월 9일 밤, 300대가 넘는 B-29 폭격기가 도쿄 상공에 나타나 약 1,700톤의 네이팜탄을 무자비하게 쏟아부었습니다. 3월 10일 새벽까지 계속된 이 맹렬한 폭격으로 축구장 57개 면적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단 하루 만에 10만 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참극이 벌어졌으며, 그중 약 10%는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고난을 겪던 조선인이었습니다.
너무나 강력한 불길이 한꺼번에 도시 전체를 덮치면서 도시는 거대한 용광로처럼 끓어올랐고, 사람들은 불길과 엄청난 열기를 피해 강으로 뛰어들었지만, 이미 강물조차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옥 같은 광경을 목격한 인류는 전쟁의 비참함을 깨닫고 전쟁을 멈춰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역사는 반복되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패망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에서 또다시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S. 트루먼은 한반도에 미군 파병을 결정했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압록강까지 진격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적으로 열세에 놓인 유엔군은 이러한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지옥불'이라 불리는 네이팜탄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한 종군 기자의 기록에 따르면, 유엔군 조종사들은 평균적으로 좋은 날에는 무려 26톤의 네이팜탄을 사용했다고 하며, 뉴욕의 유력 신문인 헤럴드 트리뷴은 네이팜탄을 '한국 최고의 무기'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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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한국전쟁에서 네이팜탄이 사용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유엔군이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네이팜탄을 무차별적으로 투하하고 있으며, 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는 야만적인 행위와 다름없다"라고 강력하게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처칠의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네이팜탄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군에 의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미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네이팜탄을 활용했습니다.
1963년부터 1973년 사이에 무려 35만 톤이 넘는 미국산 네이팜탄이 베트남 전역에 투하되었고, 미군은 마치 정해진 목표도 없이 닥치는 대로 네이팜탄을 쏟아부었습니다. 이렇게 네이팜탄이 전쟁에서 빈번하게 사용되자, 거대 화학 기업인 다우 케미칼은 미군을 위해 더욱 강력해진 '네이팜 B'를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상치 못한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됩니다.
네이팜 B의 끔찍한 참상을 생생하게 보도한 뉴스 기사들로 인해 다우 케미칼 제품에 대한 대규모 불매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대학생들부터 양심적인 화학 공학자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격렬하게 항의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다우 케미칼은 "우리의 첫 번째 고객은 정부"라며 이러한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네이팜 B의 생산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네이팜 B는 베트남 전쟁의 잔혹함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로 역사 속에 기록되었습니다.
네이팜탄이 얼마나 끔찍하게 잘 타오르는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네이팜탄은 일반 휘발유보다 훨씬 오랫동안 연소하며, 끈적거리는 특성 때문에 한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며 쉽게 꺼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1,000℃에 육박하는 엄청난 고온으로 연소되기 때문에, 직접 맞게 되면 인간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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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이팜탄 공격을 받으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지만, 이미 주변의 물까지 끓어오르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생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이러한 네이팜탄 한 발이 투하되면 약 635평이라는 넓은 지역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지옥불'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지역 분쟁에서 꾸준히 사용되었던 네이팜탄은, 더욱 파괴적이고 효과적인 무기인 백린탄 등의 등장이라는 냉혹한 현실적인 이유로 점차 사용 빈도가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백린이 혼합된 네이팜탄의 경우에는 백린탄과 마찬가지로 물속에 들어가도 꺼지지 않는다고 하니, 네이팜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조차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의 살상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원자폭탄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 역시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 '전쟁의 공포 (The Terror of War)'의 주인공인 판 티 킴 푹은 1972년, 가족들과 함께 사원에 피신해 있던 중 네이팜탄 폭격으로 주변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면서 온몸에 심각한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종군 기자 닉 우트에 의해 극적으로 병원으로 옮겨진 킴 푹은 14개월 동안의 고통스러운 입원 치료 끝에 겨우 퇴원했지만, 퇴원 후에도 끊임없는 후유증과 싸우며 힘겨운 치료를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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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끔찍한 피해 사례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네이팜탄이 국제법으로 명백하게 금지되어 있다고 믿지만, 사실 국제법은 네이팜탄 자체를 특정하여 금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용은 특정 재래식 무기 협약에 의해 제한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이 조항조차도 법적인 허점이 존재하여 여전히 백린탄이나 열압력탄과 같은 비인도적인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
이러한 잔혹한 현실과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킴 푹은 절망하지 않고 "나는 이제 전쟁의 피해자가 아닌, 역사를 증언하는 생존자"라고 용감하게 선언하며,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친구이자 조력자,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평화를 간절히 염원하는 생존자"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킴 푹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92년 캐나다로 망명한 후 자신의 삶을 담은 자서전을 출간하고 국제적인 재단을 설립하여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돕는 데 헌신했습니다. 1997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유엔 평화문화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전 세계를 순회하며 평화의 소중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킴 푹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희망, 그리고 용서로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더 이상 전쟁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도 이러한 비극적인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평화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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