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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예능

너무 이른나이에 떠난 비운의 뮤지션 김현식-내 사랑 내 곁에,

by CleanHub 2023.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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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김현식 형님을 리뷰하는 시간입니다. 올해는 그가 하늘나라로 떠난 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비록 그는 더 이상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그의 노래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만약 현식이 형님이 아직 살아계신다면, 올해에는 62세의 나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공연장에서 멋진 콘서트를 많이 열고, 디너 쇼도 멋지게 진행하였을 것입니다. 김현식은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80년대를 대표하는 레전드 중 하나로, 한 획을 그은 가수로 기억됩니다.

 

김현식은 1958년 2월에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충남 홍성의 유지고 출신이었고, 외할아버지는 영문학자로 옥스포드 출신이었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여러 번 학교를 전학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기타를 만났을 때 음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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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명지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음악밴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지만, 선배와의 갈등으로 밴드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은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가족에게 몰래 자퇴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을 마치고,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김현식은 전인권, 한영애 등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검은 나비, 동방의 빛, 신촌 블루스 등의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면서 뮤지션의 길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8년에는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데뷔 앨범 발매가 지연되었고, 1980년에 데뷔 앨범 '봄여름가을겨울'을 발표했지만, 데뷔 음반의 반응이 기대 이하로 저조하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식이 형님이 현실에 맞서 술과 담배를 의지하게 되었지만, 당시 그의 음악은 락, R&B, 재즈 등이 혼합된 혁신적인 퓨전 곡으로 평가받았으나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습니다.

 

김현식의 마지막 히트곡 '내사랑 내곁에'를 들어보면 그의 보이스가 거칠고 허스키한 톤으로 노래하며 목소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식 형님이 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나 데뷔 앨범을 녹음할 때, 그의 목소리는 3옥타브 고음을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미성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맑은 목소리를 가졌으며, 무대에서는 파워풀하고 강렬한 라이브를 선보였습니다. 그의 훌륭한 노래 실력으로 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와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했던 뮤지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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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현식은 다양한 음악 장르와 블루스 스타일을 통해 자신만의 음색을 찾았습니다. 평소에 술과 담배를 많이 피웠던 탓에 그의 목소리는 낮고 굵은 톤에 쇳소리가 나는 허스키한 특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82년, 그는 신촌의 옷가게 여인에게 마음을 빼았겨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단계에서 음악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피자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피자를 배달하는 동안이 그의 삶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그러나 피자 가게는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시작되었지만 1년 후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 세종호텔, 하얏트, 크라운 호텔 등에서 다시 밤 무대에 서며 2집 앨범 '사랑했어요'를 발매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그의 미성과 가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창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김현식과 돌개바람'이라는 6인조 밴드로 나이트클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1986년에는 백밴드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3집 앨범 '비처럼 음악처럼'을 발매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히며, 당시 3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여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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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처럼 음악처럼'의 목소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더 거칠고 애절한 음색으로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이민을 가고 아내와 이혼을 하면서, 현식이형은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술과 담배를 과도하게 소비하며 건강이 악화되었고, 1987년에 대마를 피우다 걸려 구속되는 등의 어려움에 직면하였습니다.

 

김현식을 비롯한 80년대와 90년대의 천재 뮤지션들 중에서 특히 남자 가수들은 대마와 관련된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 공통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창작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관련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대마 흡연이 일상적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았고, 요즘과는 다른 시대적 분위기였습니다. 현재는 시대 상황과 윤리 의식이 많이 변화하여, 이미지를 손상시키면 회복하기 어려운 인기 뮤지션들이 불미스러운 일을 피하려고 합니다.

 

1988년 2월, 김현식은 63빌딩 재기 콘서트에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마음을 속죄하기 위해 머리를 밀고 무대에 서며 팬들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그해 9월, '언제나 그대 내 곁에', '여름밤의 꿈', '그대 내품에'가 수록된 4집 앨범을 발표하며 골든디스크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김현식
김현식

이후 김현식은 락보다는 블루스 음악을 더 지향하였는데, 이때 '그대 내품에'라는 곡은 원래 유재하의 노래였지만,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룹 사운드 멤버이자 후배로 깊은 정을 가졌던 유재하가 1987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김현식이 이를 추모하며 수록한 곡입니다. 이후에도 밤샘 녹음과 술, 담배에 의존하면서 현식 형님의 건강은 악화되고, 병원에 자주 입원해야 했다고 합니다.

 

동료 가수인 함춘호나 이문세도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 왜 술을 마시냐?"고 걱정한 정도로 김현식은 술을 과도하게 마셨고, 이러한 생활로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습니다. 1989년에는 영화 '비 오는 날 수채화' OST를 녹음할 때 김현식과 권인하가 듀엣으로 노래할 계획이었지만, 김현식이 "소주 한 병을 마셔야 녹음을 한다"며 고집을 부리면서 녹음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신 강인원이 녹음에 참여하면서 김현식 혼자 따로 녹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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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에는 '넋두리'와 '향기 없는 꽃' 등이 수록된 5집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때까지 그의 건강 상태는 심각하여 의사는 '술을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로 간이 극도로 손상되었습니다. 병원 입원 중에도 수시로 외출하여, 힘들게 만든 5집 앨범이 그의 생전 유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김현식의 절친인 권인하는 그의 공연 후에도 밥을 먹지 않고 술만 마셨다며 걱정을 표현했으며, 그의 건강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FM 라디오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공개방송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려 했지만, 노래 첫 소절을 겨우 부른 뒤에 현식이형은 쓰러지기도 하고, 1990년 7월에는 사실상 김현식의 마지막 공연이 열렸습니다.

 

김현식은 간경변 진단을 받은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곡을 녹음했으며, '술을 마시지 않으면 노래를 할 수 없다'며 자신의 몸을 무시했습니다. 5집 앨범 녹음 당시에는 술을 끊어보려고 기독교를 믿으며 노력했지만, 노래를 부르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현실 때문에 마이크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으며, 주변 동료 가수들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종종 했습니다.

 

그리고 무대에서 '노래하다가 죽고싶다'는 말을 하며, 삶에 대한 의지가 크게 약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노래 가사를 쓸 시간을 가졌습니다.

 

병상에서 알게 된 소녀의 생일날, 다른 환자와 간호사들이 둘러앉아 '생애 최후의 콘서트'를 열어 21곡의 노래를 부르고 녹음 테이프를 생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테이프에서 살린 17곡을 후에 앨범으로 발매할 수 있게 되었고, 김현식의 팬들은 이 앨범을 통해 한번 더 그를 추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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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레코드사 사장의 포기하는 말에도 불구하고 김현식은 6집 앨범 녹음을 진행하다가, 1990년 11월 1일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 그 날은 그가 가장 아끼던 후배 가수 유재하의 기일과 일치했으며, 그의 누나는 그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당일, 김현식은 동아기획 김영 사장에게 "자기는 괜찮으니까 퇴원해서 내일 녹음하겠다"고 전화통화를 한 뒤, 갑작스럽게 사망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고 합니다.

 

1991년 1월에 발매된 김현식의 유작 앨범 6집 '내 사랑 내 곁에'는 세상에 없어도 200만 장 이상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으며,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수상하고 영상음반 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처럼 음악처럼'과 함께 이 곡은 후배 가수들과 해외 가수들에 의해 커버되었으며, 1992년 나훈아 쇼에서도 훈아가 커버한 곡입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저희 누구나 다 듣고 노래했을 만큼 감동적인 곡 중 하나입니다. 김현식 형님의 노래를 통해 그의 삶의 힘들었던 순간과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곡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우리에게 아련한 추억을 남겨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현식이형의 노래는 여전히 즐거운 것은 제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그의 후배 가수들과 지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현식이형은 어쩌면 말을 거칠게 하고 괴팍한 면도 있지만, 정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현식이형은 돈이 없는 후배 가수들에게도 술을 대접하고, 장난을 많이 쳤으며, 동생들을 직접 데려다주거나 차를 대여주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권인화는 김현식을 "대인"이라고 말하며 그의 베품과 후배들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기도 했고, 그의 백밴드인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과 고 전태관은 김현식을 존경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현식이형은 후배 가수인 한영애나 정경화의 앨범 녹음에서 자처해서 코러스를 해준 적도 있었으며, 그의 별명 중 하나인 '원펀치 쓰리강냉이'는 한 번 쳐맞으면 이빨 세 개가 날아가거나, 한 방에 쓰러진다는 뜻으로 그의 주먹이 강하다는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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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식이형은 싱어송 라이터로서 봄여름가을겨울, 사랑했어요, 추억만들기 등 뿐만 아니라 직접 작사와 작곡을 해온 곡들이 많았으며, 가요계의 시인이라는 칭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사망 이후 10주기, 15주기, 20주기를 추모하는 헌정 앨범이 후배들을 통해 발매되었고, 2002년에는 그가 병상에서 불렀던 17곡으로 만든 앨범 'The Sickbed Live'가 발매되었습니다.

 

2013년 10월에는 김현식의 미공개 노래 9곡을 포함한 '김현식, 2013년 10월'이 발표되었고, 2019년 9월에는 김현식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사랑했어요'가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미공개 유품들이 공개되며 김현식 30주기 추모 가요제가 언택트로 방영되었고, 2020년에는 김현식 리메이크 앨범 '추억 만들기'가 발매되었습니다. 이 앨범에는 규현, 다비치, 더원, 이석훈, 선우정아, 하림 등 13팀의 실력 있는 가수들이 참여했습니다.

 

현식이형은 피를 토하고 복수가 차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노래를 불렀던 진정한 뮤지션으로, 너무 일찍 우리를 떠나셔서 정말 안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래들은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 그를 기억하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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