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과학수사기법으로 검거한 금호강 살인사건

반응형

2015년 4월 23일, 대구광역시 금호강 둔치에서 윤용필 씨(당시 29세)가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은 뒤에 큰 사건으로 알려지게 된다. 부검 결과 윤 씨는 둔탁한 흉기로 머리를 17차례 이상 가격당해 타살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피해자인 윤 씨는 주검으로 발견되기 18일 전, 4월 5일 새벽 다섯 시, 근무하던 공장에서 야간 작업을 마치고 퇴근한 이후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평소 윤 씨는 오전 8시까지 잔업을 하다가 퇴근하는 것이 평소 습관이었지만, 이 날은 약속이 있다며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해 윤 씨의 실종과 사망 사이에 약속을 잡은 상대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었으나, 경찰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CCTV 영상에서 윤 씨와 함께 걸어가는 남자와 그 남자가 사건 현장에서 혼자 빠져 나오는 영상을 찾아냅니다.

2023.09.27 - [미스테리,사건사고] - 1990년 발생한 공인회계사 임길수 피살사건

1990년 발생한 공인회계사 임길수 피살사건

그러나 이 영상에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함께 있던 남자를 판별할 수 없었고, 그의 상체는 우산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경찰은 윤 씨의 친구들 중 윤 씨의 실종 및 사망추정 시간에 알리바이가 확실한 사람들에게 해당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영상 속 두 남자가 죽은 윤 씨와 윤 씨의 친구인 박 모씨(28세)라고 정확히 지목했습니다. 박 씨의 독특한 걸음걸이와 영상 속 남자의 걸음걸이가 매우 흡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박 씨와 윤 씨는 중학생 때부터 함께한 15년 친구로, 평소에도 각별한 사이였고, 쇼핑몰을 운영하며 윤 씨의 실종 전까지 동거를 하였습니다. 쇼핑몰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동거는 중단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박 씨와 윤 씨는 윤 씨의 실종 이후 약 3개월 전, 동시에 서로를 수익자로 하는 사망 보험금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러나 박 씨의 보험은 납부가 이루어지지 않아 해약되었고, 윤 씨의 보험은 박 씨가 보험료를 대신 납부하여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박 씨는 빚을 지고 있었고, 상당한 금액을 이체하여 자신이 수익자인 사망 보험을 유지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윤 씨의 가족 상황은 매우 어려웠는데, 어머니는 4년 전에 사망하고, 형제도 없었으며, 유일한 가족인 시각장애인 아버지마저 치매로 인해 심신상실 상태였기 때문에, 실종 후에도 실종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23.09.27 - [미스테리,사건사고] - 최장기 지명수배 살인범 센트럴 시티 살인사건 용의자 황주연

최장기 지명수배 살인범 센트럴 시티 살인사건 용의자 황주연

윤 씨의 실종 이후 약 일주일 후, 박 씨가 윤 씨의 친척에게 연락하여 실종 신고를 하도록 한 것이 포착되면서 박 씨에 대한 의심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걸음걸이 외에는 박 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걸음걸이를 분석하는 법보행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사건 당일, 박 씨는 오전 두 시 경과 여덟 시 경에 자신의 자택이 있는 경남 거창에서 전화통화를 한 것이 증명되었으나, 그 사이 여섯 시간 동안의 알리바이는 불확실한 상태였습니다.

 

거창과 사건 현장인 대구를 자동차로 이동하는 데는 한 시간 가량이 소요되므로, 범행 후 돌아올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박 씨는 그동안 집에서 자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은 이에 따라 박 씨를 체포하고 윤 씨를 살해한 증거가 있다며 자백을 유도하였고, 박 씨는 경찰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이로써 사건의 퍼즐이 맞추어지게 되었습니다.

 

박 씨의 자백에 따르면, 사건 당일 새벽, 거창에서 대구로 가기 위해 택시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박 씨는 택시 기사에게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목이 아파서 말을 할 수 없는데 대구까지 얼마에요?'라는 메모를 작성하여 보여주고 택시에 탔다고 진술했습니다.

금호강 살인사건

이날 새벽 거창에서 대구로 향한 택시는 유독 한 대뿐이었고, 그 택시의 기사는 메모를 보여준 손님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택시 기사의 기억에 따르면 손님의 얼굴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매우 마른 체격의 젊은 남성이었다는 점이 박 씨와 일치했습니다.

 

더불어, 박 씨가 제시한 사건 현장의 지도는 실제 CCTV에 찍힌 용의자의 동선과 완벽하게 일치하였으며, 박 씨가 그린 교통사고 현수막의 위치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박 씨의 자백은 범인이 아닌 경우에는 불가능한 자백이었습니다.

 

더불어 박 씨는 사건이 검찰로 넘겨진 후에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경찰이 CCTV 속 용의자와 자신의 걸음걸이가 유사하다는 이유로 특정 짓는 표적수사를 받고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은 박 씨의 진술 과정이 모두 녹음되었으므로 강요가 없었다고 반박하였습니다.

2023.09.27 - [복지알림] - 개인택시 면허 가격 고공행진 억대로 비싸진 이유?

개인택시 면허 가격 고공행진 억대로 비싸진 이유?

2015년 11월 27일, 1심 재판이 열렸습니다. 검찰은 윤 씨와 박 씨의 공동지인인 법보행 분석 전문가 2명을 증인으로 내세워 CCTV에 촬영된 용의자가 피의자 박 씨임을 증명하였습니다.

 

전문가들은 박 씨와 CCTV에 찍힌 남자의 보행에 나타난 특징적인 보행법이 동일하며, 이러한 특징적인 보행법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흔치 않다고 분석하여 박 씨와 CCTV 용의자가 동일한 사람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감정 결과는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되었으며, 이 사례는 국내에서 최초로 법정에서 법보행이 증거로 인정된 사례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피의자 박 씨는 유죄 판결을 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박 씨는 1심 재판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습니다. 경찰이 CCTV 속 용의자와 자신의 걸음걸이가 유사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범인으로 특정짓는 표적수사를 받고 자백을 강요받았다는 주장을 지속했습니다. 경찰은 박 씨의 진술 과정이 모두 녹음되었으므로 강요가 없었다고 반박하였습니다.

 

박 씨는 교도소에서 복역하며 주요 방송사인 KBS, SBS, MBC 등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친구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나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 이에 대한 응답으로, SBS의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해당 사건을 다룬 2016년 1월 23일 방송을 통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박 씨가 원하는 대로 결백을 입증하지 못하고, 출연한 법보행 전문가와 프로파일러들은 모두 박 씨가 실제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박 씨가 편지의 말미에서 '증거가 나온다면 벌을 받겠다'고 한 부분은, 누명을 쓰고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보다는 범행을 저질렀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무죄를 받아보려는 사람이 할 법한 발언으로 해석되었습니다.

 

2016년 5월 26일에 열린 2심 재판과 8월 30일의 상고심에서도 박 씨의 판결은 뒤집히지 않고 원심이 확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법보행이 증거로 사용된 국내에서의 첫 번째 사례였으며, 이외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범행을 밝히는 데 거의 유일한 증거였습니다. 사건 현장이나 피해자의 몸에서 범인의 DNA가 수집되지 않았으며, 사용된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범인 또는 목격자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2023.09.27 - [미스테리,사건사고] - 내안에 악마가 있다. 정두영 연쇄살인사건

내안에 악마가 있다. 정두영 연쇄살인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보행은 단독으로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기 어려운 증거였습니다. 걸음걸이는 DNA나 지문처럼 특정 개인을 명확히 식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닮았을 뿐이라는 반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건 CCTV에 찍힌 용의자와 박 씨의 걸음걸이가 지나치게 특이하여 우연히 일치할 가능성이 거의 배제되었지만, 법보행 분석은 이러한 반박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는 이 사건이 첫 번째로 법정에서 법보행이 증거로 사용된 사례였기 때문에 판사들도 이를 채택하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만약 박 씨가 경찰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무죄 주장을 끝까지 지속했다면, 법보행 분석 이외에 박 씨를 범인으로 간주할 다른 증거는 간접적인 정황 증거와 같이 채택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이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박 씨의 자백 덕분에 국내 사법 역사에서 법보행이 증거로 사용된 최초의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박 씨의 신상 정보는 프로그램 방송 후에는 밝혀졌으며, 윤 씨와의 관계를 입증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공개되어 사건에 대한 이해가 더욱 폭넓게 이루어졌습니다.

 

 

#금호강 #걸음걸이 #피살사건 #살인사건 #조폭 #그것이알고싶다 #피의자 #범죄와의전쟁 #과학수사 #용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