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스테리,사건사고

끔찍한 인권유린의 현장 1987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전말

by CleanHub 2023. 10. 24.
반응형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대한민국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인권 유린 사건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kP28tuMz28&pp=ygUP7ZiV7KCc67O17KeA7JuQ

이 시설은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랑아(길거리에서 행동하거나 숙소가 없는 사람) 수용시설 중 하나로 알려졌으며 부산시와 정부의 협조 아래에서 운영되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에는 전두환 정권의 지원 하에 장애인과 부랑아를 대상으로 단속이 강화되었습니다.

 

이 시설에서 약 12년 동안 많은 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처음으로 알려진 사망자 수는 최소 513명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시체가 암매장되거나 근처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팔린 것으로 추정되어 정확한 사망자 수를 확인하기 어렵게 했습니다. 2022년 8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식 사망자 수는 657명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이 시설에 수용된 원생들 중 약 70%가 일반 시민이었으며, 그들은 형제복지원 직원들에 의해 납치되고 구금되었습니다. 부산시청과 부산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로 인해 탈출한 원생들도 다시 잡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2022년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전두환 대통령도 이 사건의 일부를 지시하였으며,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구출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2023.10.24 - [미스테리,사건사고] - 2007년 발생한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사건의 전말

 

2007년 발생한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사건의 전말

해병대 대원 두 명이 강화도에서 경계근무를 마치고 귀가 중에 차량에 치여, 칼을 든 남성에게 공격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한 명의 해병은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었

cleanhub.tistory.com

시설의 원장과 관리자급 직원 4명은 특수감금죄와 같은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상급자의 지시로 인한 살인 혐의는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반정부 시위로 번지게 두려워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2년 후에 석방되었으며, 원장은 2011년 사임을 전후하여 치매로 고통받았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묘사하며, 한국 내에서 한국인에 의한 인권 유린의 예로 나치의 아우슈비츠나 소련의 굴라그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형제복지원은 처음에 박인근이 인수한 감만동 형제육아원을 모태로 개설되었으며, 기독교의 영향 하에 부랑아와 부랑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운영되었습니다. 그 후 부산시로부터 아동복지시설로 승인을 받았고, 1979년에 "형제복지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1975년 이후 12년 동안, 이 시설에서는 국고 횡령, 아동 강제 노동, 학살 등 많은 형태의 범죄가 발생하였고, 1987년에 그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부랑아를 선도하는 명목 아래, 노숙자, 행려병자, 고아들, 그리고 심지어 일반 시민들까지 납치하고 불법적으로 감금 및 강제 노역을 시키는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시설은 군대와 같은 수직적인 구조로 운영되어 원생들을 중대나 소대별로 나누고 통제하였으며, 축사 주위에 철조망과 초소가 설치되어 탈출을 방지하였습니다.

2023.10.23 - [미스테리,사건사고] - 불발로 끝난 1992년 시한부종말론 다미선교회 한국 휴거주장 사건

 

불발로 끝난 1992년 시한부종말론 다미선교회 한국 휴거주장 사건

1990년대 세기말을 중심으로 이장림 목사(1948년생)를 중심으로 한 유사 개신교 계열의 이상한 종교가 생겨났습니다. 이 종교는 1992년 10월 28일에 예상된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 주장하는 유언을 퍼

cleanhub.tistory.com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학살과 인권유린 사건은 극도로 비인도적이며 잔인한 사건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시설 측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저항을 꺾기 위해 폭행을 가하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살해하거나 유기하였으며 심지어 어린 아이들에게도 예외 없이 가혹하게 대하였습니다.

 

이런 폭력과 학대는 여성과 나이 어린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부 남성에게도 성폭행이 더해졌습니다. 거의 모든 피해자들에게는 충분한 식사도 제공되지 않았으며, 식료품 공장에서 생산된 식품 대부분이 외부로 판매되고 국가보조금과 작업 수당까지 갈취되었습니다.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약속된 금전은 실제로 주어지지 않았으며, 탈출을 시도하려는 피해자들은 경비원에게 잡히게 되었습니다. 정신요양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며, 의사의 진단과 경찰의 검사를 거치지 않고도 일반인들이 입원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장과 관리자들이 피해자들을 통제하고 진료가 아닌 신경안정제만을 사용하여 중독 상태로 밀어넣었습니다.

 

숙소 건설과 식사 준비, 심지어는 질병 치료까지 모두 피해자들이 스스로 해야 했으며, 지속적인 구타와 강제 노동으로 많은 피해자들이 죽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사망한 원생의 수만 513명에 달했으며, 몇몇 원생들의 시신은 인근 의과대학에 해부실습용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이 사건은 부산시 공직 사회의 공조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시설 관리를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맡았으며 경비원과 경찰도 이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2023.10.20 - [미스테리,사건사고] - 주변여자와 친구딸까지 살해, 1994년 김용원 연쇄살인 사건

 

주변여자와 친구딸까지 살해, 1994년 김용원 연쇄살인 사건

1994년 4월과 2005년 3월부터 6월까지의 일련의 사건은 충청북도 괴산군, 진천군, 청주시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범인은 김용원이라는 남성이었습니다. 김용원은 당시 39세였으며 이

cleanhub.tistory.com

이 사건을 조사하다가도 공직 사회의 일부 인물이 수사를 방해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구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비인도적이며 정의로운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입니다.

 

당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시 의료 관계자와 의료행정 역시 허술하게 이루어진 사건으로, 부검서류 날조나 사망 원인을 날조하는 등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또한, 부산시 의료 관계자들이 병리과 의사가 아닌 산부인과 의사가 부검을 맡는 등 의료행정도 부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현장 검사나 감독 역시 부실하게 이루어졌으며, 내무부훈령에 따라 관할 지서와 파출소장이 주 1회 순찰하는 것조차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의 창설자인 박인근은 직업군인 출신으로, 국방경비대에 복무하며 형제복지원을 설립하고 운영했습니다. 이 복지원은 국고 지원을 받아 운영되었지만, 그 돈을 횡령하고 부정하게 사용하여 고급 아파트나 콘도, 골프 회원권을 샀습니다.

 

또한, 본래 목장과 운전 교습소를 세운 이후, 원생들을 감금하고 강제로 중노동을 시키는 비참한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뒷받침된 후에도 박인근은 다양한 훈장을 받으며 사회적 지위를 높였고, 이 복지원에 관한 대형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1986년에는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의 김용원 주임검사와 포수가 복지원을 발견하고 비리를 목격했습니다. 그 후, 1987년 1월 17일에 복지원의 관련 인물들은 횡령, 특수감금죄, 외화관리법, 초지법, 건축법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2023.10.17 - [미스테리,사건사고] -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정리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정리

2014년 2월,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은 박 가족의 세 모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가족은 이 단독주택 반지하에서 살고 있었으며, 가족 구성원은 6

cleanhub.tistory.com

이후에도 박인근은 외출을 허락받아 병원에 가거나 목욕을 하면서 감옥에서의 처우가 상당히 특별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언론에 알려지자 해당 경사는 해직되었으며, 전국부랑인시설연합회도 박인근을 회장으로 뽑았다가 여론의 반발로 이를 철회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빨리 덮어버리고자 했으며, 그 이유는 전두환 본인이 강제수용을 지시한 책임 때문에 상당한 압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사건이 전두환 정부의 이미지와 정권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인근을 포함한 관련 인물에게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선고하였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 불만이 크게 터져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그동안 미처 밝혀지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으며, 인권 및 법 질서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다시한번 논의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인해 부랑인 수용시설의 인권 문제가 크게 들어섰고, 이로 인해 내무부는 1987년 2월 16일 훈령 410호를 폐지하고 부랑인과 관련된 업무를 보건사회부에 맡기도록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부랑인 시설의 운영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으며, 이러한 개선을 위한 운영규정을 제정했습니다.

 

부산 직할시는 박인근 대표를 포함한 이전 이사진을 해임하고, 새로운 관선 이사진을 파견하도록 결정했습니다. 또한, 이전 수용자들을 다른 시설로 이전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문제의 해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박인근이 1991년에 재단을 되찾고 일부 건물을 고쳐 '실로암의 집'이란 중증 장애인 요양시설을 세우는 등, 이 사건 이후에도 일부 장소가 다시 사용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지 일부는 주거 지역으로 개발되었으며, 시설 내에서 유골이 발견되었으나, 이들은 무연고 처리 후 납골시설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러나 400여구의 시신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하고, 아파트 단지가 이미 들어선 관계로 시신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2023.10.17 - [미스테리,사건사고] - 성욕 참지못해 딱 한번본 선배 약혼녀 집 침입 2019년 벌어진 순천 아파트 성폭행 살인사건의 전말

 

성욕 참지못해 딱 한번본 선배 약혼녀 집 침입 2019년 벌어진 순천 아파트 성폭행 살인사건의 전

2019년 5월 27일, 아파트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서, 피해자 B(42)씨는 아침 6시경, 약혼한 남자친구의 직장 후배인 정 모(36)씨를 문 앞에서 만났습니다. 정 모씨는 가짜 급한 일을 얘기하며 B씨의

cleanhub.tistory.com

또한, 부산직할시공원묘지관리소(현 영락공원 사업단) 매장처리부의 기록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 2년 동안 추가로 3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이들은 모두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로 인해 시신을 묻는 곳은 이미 아파트 단지로 인해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학살 #용의자 #장애인 #부랑자 #납치 #범행동기 #살인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