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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사건사고

70년대부터 발견된 남침용 북한땅굴의 규모와 발견과정

by CleanHub 2023.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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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내에는 북한의 군사적 목적으로 파인 지하 도로인 남침용 땅굴이 몇 군데 존재합니다. 이 땅굴은 주로 간첩이나 특수부대원들이 오가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침용 땅굴은 북한이 대한민국에 대한 침공 및 습격을 시도하기 위한 준비책으로 설계되었으나 실제로 대규모 북한군의 이동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총 4곳이 있으며, 그 중 3곳은 관광 명소로 개발되어 국내외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군사 시설을 관광 명소로 만드는 사례가 있어, 팔때마다 관광 명소로 변하는 상황이 발생한 셈입니다. 특히 판문점에 방문한 관광객들은 꼭 이 남침용 땅굴도 방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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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벌어진 북한의 대남도발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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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침용 땅굴을 관광할 때는 카메라나 캠코더와 같은 촬영 기기를 소지할 수 없으며, 이러한 기기들은 땅굴 입구에 보관함에 맡겨야 합니다.

 

땅굴 내부는 어둡고 좁아서 촬영이 어렵고, 높이가 낮아 몸을 숙여가며 통과해야 하므로 촬영이 더 어려워집니다. 땅굴 내부는 암석으로 둘러싸여 있어 장비에 손상을 입힐 우려가 있으므로 몰래 촬영하려는 이유는 없습니다.

 

땅굴을 통해 북한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장난으로든 진지하게든 나올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경계병력들을 따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경로는 콘크리트로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방부는 4곳의 남침용 땅굴을 공식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더 많은 땅굴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1998년에는 남침용 땅굴 징후가 있는 21곳 가운데 개연성이 높은 7곳에 대해 시추작업을 벌였으나 추가적인 땅굴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2000년 이후에도 땅굴에 관한 정보를 얻지 못하였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5차례의 땅굴 탐사작업을 벌였지만 결과는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여름에는 무더위와 말라리아, 겨울에는 혹한기 때문에 땅굴 수색 작업을 봄과 가을철에 집중적으로 실시합니다. 이미 발견된 땅굴을 은폐하거나 존재하는 장거리 땅굴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되지만, 최전방 지역에는 여전히 땅굴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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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는 북한이 1970년대에 땅굴을 파서 탐사작업에 대응하는 방안을 시행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제1군사령관 시절 제4땅굴을 직접 발견한 18대 국회의원 이진삼은 2009년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안에 대해 논의하며, 땅굴을 조사하는 팀에 복무하려는 의향도 표명한 바 있습니다.

 

1990년 3월 2일, 제4땅굴이 확인되기 하루 전, 당시 국방부장관인 이상훈은 국회 본회의(임시회)에서 땅굴 탐사 작업이 진행 중이며 북한의 남침 땅굴이 20개 이상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10월 30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국방부 대변인 김민석은 국방백서를 통해 전방 지역에 20개 정도의 땅굴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재확인했습니다.

북한땅굴
북한땅굴

현재에도 육군은 매년 DMZ에서 병사들을 차출하여 땅굴 조사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복무 중인 군인들에게는 이 작업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으며, 특히 공병 및 수색 부대에서 이 작업을 더욱 집중적으로 수행합니다.

 

땅굴 조사 작업 중 현지 부대의 간부들이 말하기를, 천연 동굴과 공동이 많아서 땅굴로 오해하기 쉬운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5일에 대한민국 육군 제25보병사단 담당 구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땅굴은 폭이 90cm, 높이는 1.2m, 깊이는 250cm에서 450cm로, 길이는 약 3.5km에 이르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땅굴은 서울에서 약 65km 거리에 위치하며, 1시간에 1개 연대 이상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었으며 궤도차를 통해 중화기와 포신도 운반할 수 있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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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굴은 육군 일병 이상록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북한군 측의 반격으로 약 1시간 15분 동안의 교전이 있었으며, 아군에서는 3명의 병사가 전사하고 5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구정섭 중사에게 을지무공훈장, 이상록 일병에게 충무무공훈장, 그리고 분대원 7명에게 화랑무공훈장 등의 포상이 주어졌고 1계급 특진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땅굴 발견 후 15일째인 11월 20일, 한국 육군과 해병대 2명, 미 육군과 해군 6명 등 8명으로 구성된 공동 수색조가 땅굴의 구조와 제원을 정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작업을 진행 중, 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폭발로 대한민국 해병대 김학철 소령과 미 해군 장교 로버트 맥퀸 벨린저 중령이 사망하였고, 미 육군 5명과 한국 육군 1명 총 6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1땅굴은 휴전선 남방한계선을 불과 800m 남겨두고 위치하며, 안전상의 이유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땅굴과는 달리 심도나 높이가 안전하지 않아 관광지로 개발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북한땅굴
북한땅굴

땅굴 내에서 노획된 장비들은 많은 다양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음식과 반찬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반합도 발견되었습니다. 이 땅굴은 지표면과 가까워서 사람이 삽으로 파서 도달할 수 있는 깊이였으며, 북한군이 도망가서 남측으로 빠져나간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나오던 증기는 북한군이 꼬부랑국수를 먹다가 올라온 것으로 밝혀졌으며, 수색작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급히 도망치는 소리가 들렀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 양측 군인들이 매우 근접한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땅굴 내부에는 전선, 갱도차, 레일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벽에는 작업 일정과 '속도전', '통일로'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일부 지점에서는 '보임'이라고 적혀 있었으며, 땅굴 내부의 천장은 뚫려 있어 남측 초소를 관찰할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또 다른 땅굴인 제2땅굴은 1975년 3월 19일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땅굴은 해외에서 수입한 현대식 굴착장비를 사용하여 지표 45m 아래의 단단한 화강암을 뚫어놓은 것으로, 제1땅굴보다 훨씬 더 큰 규모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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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굴은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광장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쪽 출구는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 땅굴은 1시간에 1만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으며 차량, 야포, 전차도 통과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땅굴의 너비와 높이는 2m, 길이는 3.5km에 이르며 지하 깊이는 50~160m로 평가되었습니다.

 

탐사팀은 화강암의 특성 상 빈 공간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45개의 시추공을 통해 땅굴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시추석들이 일정하게 짧았던 것과 모래가 나왔는데, 이 모래가 강원도 산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다 모래였다는 사실로부터, 시추석들에서 화약 성분이 검출되어 땅굴 내에서 폭발이 발생했음을 확인했습니다.

 

땅굴을 막기 위해 남측에서 역갱도를 작업하고 땅굴 좌측면으로 진입하였으며, 현대건설의 중장비를 사용하여 화강암을 굴착하였습니다. 땅굴 내부에는 북한군이 시간을 끌기 위해 쌓아놓은 벽이 3개 있었으며, 이 벽의 돌은 화강암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돌이었습니다.

 

이 돌벽을 철거 중에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이 작동하여 1975년 4월 8일에 국군 장병 7명이 전사하였고, 이후 5월 28일에 또 다른 1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여 총 8명이 희생되었습니다. 현재는 땅굴이 관광지로 개방되어 있으며, 관광 코스에서 일부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땅굴
북한땅굴

관광 코스에는 고석정, 철원 노동당사, 월정리역이 포함되어 있으며, 총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정도입니다. 일부 구간은 비무장지대 안쪽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 간접적으로 비무장지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지역은 안보 관광 코스로 운영되고 있으며,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경계병력이 상주하고 있으며 무인감시장비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제3땅굴은 1978년 10월 17일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땅굴은 제2땅굴과 비슷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판문점 남방 4km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땅굴은 아치형으로 너비와 높이가 2m이고 길이는 1,635m로, 지하 73m 깊이에 위치하며 1시간에 3만여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또한, 이 땅굴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땅굴 중 하나로서 발견 당시에 큰 충격과 공포를 일으켰습니다.

 

이 땅굴의 발견을 소재로 '똘이장군: 제3땅굴편'과 같은 영화 및 만화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당시 소년지에 연재된 많은 만화 이야기들이 이 땅굴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제3땅굴은 1974년에 남한에 간첩로 침투하였다가 자수한 김부성이 머물던 개성 근처에서 땅굴을 파는 업무를 진행하였다는 증언에서 출발하여 발견되었습니다.

 

파주시에서 운영하는 안보 관광 코스에 포함되어 있어서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다른 관광 코스가 있으며, 모두 제3땅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발지는 임진각국민관광지나 도라산역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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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좌 등반 전문 산악인 철의여인 클라이머 고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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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코스마다 소요 시간이 다릅니다. 특히 제3땅굴은 셔틀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으나 셔틀승강기 사용은 유료입니다. 임진각에서 출발하는 경우, 도보 관람과 셔틀 사용 관람으로 구분되며, 셔틀 사용 관람은 추가 비용이 듭니다.

 

도보 관람도 거리가 크게 힘들지 않지만, 경사와 습기가 많은 지하 공간이므로 건강에 이상이 있는 분들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군사 구역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 시 조심해야 하며, 북쪽 지역 촬영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제3땅굴과 관련하여 전두환과의 연관성도 언급됩니다. 전두환이 제1보병사단의 사단장 시절에 이 땅굴이 발견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두환이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영전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 땅굴 발견이 그의 경력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전두환은 이 땅굴 발견 과정에 직접 관여하여 지휘하였습니다.

 

2022년 현재까지 발견된 북한의 4개 땅굴 중에서는 제4땅굴이 가장 발달된 형태의 땅굴로 평가됩니다. 이 땅굴은 제3땅굴 이후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며, 땅굴 발견과 관련된 과정에서 헌트라 불리는 군견이 희생되었습니다.

 

헌트는 폭발물 탐지 중 화약 냄새를 맡고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로 달려가 폭발하여 희생하였으며, 이로써 분대원 1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헌트는 인헌무공훈장을 받았으며, 그 동상은 제4땅굴 근처에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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